사회를 듣는 귀

반쪽 대체휴일제, 추석 연휴마저 불평등해졌다

너의길을가라 2014. 9. 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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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의 추석 연휴가 다른 사람의 추석 연휴와 다르진 않았나요?"


경제적 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는 더 이상 불평등을 없애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가는 불평등의 속도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의 모습들은 한낱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


놀랍게도 이젠 추석 연휴마저 '불평등'해 지고 말았다. 적어도 '명절'이 '빨간날'이라는 것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없이 공통적으로 누릴 수 있었던 소박한 기쁨이 아니었던가? (물론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긴 하지만, 글을 원활하게 써나가기 위해 이 부분은 차치하도록 하겠다.) 안타깝게도 그 소박한 기쁨이 더 이상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게 됐다.



추석 연휴마저 '불평등'해졌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 바로 쉴 수 있는 날(빨간 날)의 수가 직종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는 뜻이다. 좀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자면, 관공서와 학교는 의무적으로 대체휴일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공무원의 경우 대체휴일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경우에는 선택적으로 대체휴일을 적용하기 때문에 다수의 회사원들은 출근을 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공무원도 쉬고 대기업도 쉬는데…" (경기도 광명의 박모 씨) 10일 대체휴일 출근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 <헤럴드경제>


"지난 토요일 오후 4시까지 근무하고 시댁에 다녀와 오늘 아침 출근했다. 더 고생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큰 병원은 쉬거나 근무하면 휴일수당이라도 주는데…. 속이 상하는 것은 사실이다." (광주 북구의 한 의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첫 대체공휴일.."휴일마저 대기업·정규직 우선" <연합뉴스>


"기분이 좀 소외되는 느낌이고, 불이익 당하는 느낌이거든요. 도로공사에 전화 걸어봤어요. 본인들은 쉰다고 해서 (통행료 출퇴근) 할인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중소기업 다니는 입장에선 굉장히 황당했어요" 반쪽짜리 대체휴일.."소외감 느껴진다" 불만 SBS


직장인들의 울분이 쌓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공무원을 위한 대체휴일제'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민간기업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그나마 노사합의 등을 통해 대체휴일제를 도입한 곳이 있는 반면, 중소기업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대기업이라고 다 쉬는 것도 아니다.



리서치 전문회사 PMI가 20~50대 직장인 남녀 1,800명을 대상으로 대체휴일제 적용 여부를 물었는데, 50.1%가 '쉰다'고 응답했고, 32.5%는 "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딱 '반쪽' 대체휴일제인 셈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이나 그 이하의 작은 규모 사업장의 경우에는 약 66%가 정상출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결과는 예상밖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예견됐던 상황이었다. 지난 2013년 8월 7일에 썼던 글(정부의 손만 거치면 망가지는 정책들, 차별적 대체휴일제)에서 '차별적 대체휴일제'에 대한 우려를 언급했던 적이 있다. 약 1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지난 글에 대한 A/S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 아무 것도 고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시 언론은 '꿀연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대체휴일제'를 예찬하고 나섰다.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환호'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당시에 네티즌들은 '대체휴일제'가 '차별적' 대체휴일제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에는 자세한 내용을 모를 수 있지만, 언론은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시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정확하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가 추진한 대체휴일제가 '차별적 대체휴일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장밋빛'으로 도배를 했던 언론의 책임은 막중하다. 만약 언론이 앞장서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면,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다수의 시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겪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난 2013년 8월 정부와 새누리당은 대체휴일제 도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당정청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결정된 것은 '법률 제·개정'이 아닌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치는 방법이었다. 이는 대체휴일제 도입에 격렬히 반대했던 재계의 입김에 정부와 정치권이 한발 물러선 것이었다.


'법률'이냐 '대통령령'이냐 하는 문제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적용 대상과 실효성에 있어 매우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중차대한 문제였다. 당시에 '법률'로 제·개정을 통해 대체휴일제를 도입했다면, 지금처럼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는 '차별적 대체휴일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안행위 간사였던 새누리당의 황영철 의원은 "지금도 민간부문이 쉬는 부분을 따로 법으로 정한 것은 없고 공공기관을 쉬게 하면 그것을 다 민간에서 받아들였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위해 정한 휴일을 민간영역이 다 지켜왔기 때문에 민간기업도 대체휴일제를 지킬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민간 기업에 대한 신뢰가 그토록 깊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순진했던 것일까? 다시 황영철 의원에게 발언 기회를 준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반쪽 대체휴일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이 쌓여가자, 여야는 부리나케 대체휴일제 적용 확대에 공감한다면서 법 개정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의 김성태 의원은 "근로 기준법을 개정하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근로자들은 모두 대체휴일에 쉴 수 있게 된다"면서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대변인은 "대체휴일제 내용을 담은 '국경일과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에 힘쓰는 동시에 모든 국민이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내년 설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대체휴일'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될까? 이 번에는 정치권이 재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국민들을 활짝 웃게 해줄 수 있을까? 반대로 재계는 또 어떤 논리로 입법을 막고,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국회를 방해할까? 만약 대체휴일제가 대통령령이 아니라 법으로 규정돼 의무적으로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에서 이 제도가 아무런 제약 없이 실현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체휴일'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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