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의심, 공소시효, 진실.. 영화《공범》을 읽는 세 가지 키워드

너의길을가라 2013. 10. 2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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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아니, 무서운 일이라고 할까? 의심받는 쪽도 힘들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의심하는 쪽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수많은 상상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를 붕괴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한다. 


《공범》은 '의심'에 관한 영화다.


끔찍한 상상을 한 번 해보자.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유괴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고, 이후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게 될까? 쉽게 상상할 수 없고,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는 딸만을 지극히 사랑하는 선량한 아버지 '순만'(김갑수)이 유괴살인사건의 용의자라는 것을 알게 된 딸 '다은'(손예진)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글거릴 정도로 다정한(상당히 병病적인 모습이었지만, 이 또한 영화의 반전을 위한 장치이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아버지와의 모습을 보여주던 손예진은 영화관에서 유괴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을 보다가 충격에 빠진다. 


김진표 감독의 《그 놈 목소리》에서 영화의 말미에 실제 범죄자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처럼(김진표 감독이 제작을 맡은 건 우연이 아니다), '다은'도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급격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의심'이 시작된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아빠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는 '다은'이라는 캐릭터에 관객들이 얼마나 몰입하느냐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설득력을 잃게 되면 영화는 표류하게 된다. 《공범》의 경우 극적인 요소들은 살아있지만, 세밀함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상 김갑수와 손예진의 연기로 커버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의심이 서서히 고조되면서, 관객들의 숨을 막히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감독은 '의문의 검은 옷을 입은 남자(임형준)'를 투입하면서 관객들을 급박하게 몰아친다. 덕분에 속도감은 살았다고 해도, '다은'과 관객들이 교감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잃어버렸다. 영화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고, 겉도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러한 의심의 과정들을 생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공범》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창원 교수가 자신의 책 『표창원의 사건추적』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강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소시효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쪽의 입장은 '법적 안정성(범죄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날 경우 증거 판단과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움)'과 '수사의 어려움'을 들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공소시효가 '가해자'의 기준에서 설정된 것이고, 그것이 사실상 수사의 편의를 위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DNA 수사 등 과학적인 수사 기법의 발달로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사실도 공소시효 폐지에 힘을 실어준다.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는 계획적 살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여론이 모아지면서 장애인과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2011년 11월 시행)됐다. 지난해 하반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이 입법예고 됐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200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7만 8776건의 범죄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그 중에 살인은 12건, 강도 26건, 강간 35건, 방화 18건이었다. 끔찍한 사건의 범죄자들이 "드디어 끝났다"며 마음의 안식을 얻었겠지만, 그 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공범》은 무엇보다 '진실'에 관한 영화다.


우리는 쉽게 진실은 선한 것으로, 거짓을 악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며 '거짓'을 압박하고, '진실'을 강요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실은 추하고, 거짓은 그 추함을 덮어주는 장치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흔히 '거짓'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는가? 물론 사회의 정의(正義)와 개인의 정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때로는 거짓이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 그것이 모순적이게도 사회를 지켜주기도 한다. 


'진실'은 추하다. 두렵고 무겁다. 결국,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건 그만큼의 용기를 가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섣불리 도전했다간 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오늘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진실'을 요구하지만, 《공범》은 이렇게 묻고 있다. "정말 괜찮겠어? 자신 있어?" 영화 속 '다은'이는 아버지 '순만'의 진실을 마주할 '힘'을 갖고 있었을까?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힘'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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