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그래비티', 중력의 평온함을 무중력을 통해 그려낸 위대한 역설

너의길을가라 2013. 10. 2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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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아?"

"고요함이요."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질문에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의 대답이다. 고요함, 그 끝없는 고요함.. 그것은 우주, 혹은 무중력 상태가 주는 신비로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평온하기 그지 없는 그 고요함이 너무도 공포스러운 고요함 혹은 적막함으로 바꾸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서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영화다. 살짝 오그라들긴 하지만, 필자는 '위대한' 또는 '경이로운'과 같은 형용사를 과감하게 선물하고 싶다. 그 정도로 '그래비티'는 놀라운 영화다. 현재 '지구인'들이 구현할 수 있는 극한이라고 할까? 무중력의 우주 공간을 이토록 실감나고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물론 '그래비티'가 모든 관객들을 만족시킬 순 없는 듯하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둘로 나뉜다. 필자처럼 '위대한' 또는 '경이로운' 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지루하다'며 나른한 하품을 하거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혹은 어느 쪽일 것 같은가?




간단하게 '그래비티'를 설명하자면, 우주 공간에서 벌어지는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중력과 무중력 상태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엿보인다. 지구라고 하는 중력이 지배하는 공간에 살고 있는 지구인들은 끝없이 무중력(우주)을 갈망한다. 그 곳은 라이언 스톤의 말처럼 고요하고, 평온하고, 안락한 공간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고통과 상처와 아픔으로 가득한 지구와는 달리 우주는 인간을 내리 누르는 온갖 중력들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다. 


하지만 폭파된 러시아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치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바뀐다. 평온하기만 했던 그 고요함은 어느새 공포로 뒤바껴 엄습한다. 우리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기스럽고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무중력이 주는 신비로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우연히 연결된 무전에서 들려온 알 수 없는 곳의 누군가로부터 들려온 음성, 그리고 개 짖는 소리, 아기의 울음소리.. 너무도 그리웠던 그 소리들, 지구의 그 갖가진 중력들을 마주한 라이언 스톤은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비티'는 표면적으론 우주에서 벌어진 재난을 다룬 영화이지만, 한편으론 자궁으로부터 한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인상이 든다. 실제로 라이언 스톤이 산소 부족으로 고통을 겪다가 우주 정거장으로 들어온 순간을 묘사한 장면에서, 그녀가 천천히 몸을 웅크리기는 모습은 마치 자궁 속의 아기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자궁이라는 공간이 주는 그 완전한 안락함에서 벗어나야만 독립된 존재로서 설 수 있다. (물론 길고 긴 양육 기간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끝없이 자궁을 그리워하지만, 그 공간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이 시끌벅적하고 혼잡한, 고통스럽고 상처로 가득한, 이 수만가지 '중력'으로 가득한 지구를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 중력이 언제나 무거움으로 다가와 인간을 옥죄진 않는다. 오히려 중력들이 나를 감싸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평온함'을 누리게 되지 않던가? 


중력은 결국 '죽음'이고, 중력이야말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한 팁! 

1. 아무래도 폐소공포증과 공황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주의를 하셔야.. 

2. 조폭 영화, 총길과 칼부림에 지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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