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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승우의 욕설에 주목할 여유가 없다

너의길을가라 2017. 3. 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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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도중 상대 선수와 크게 부딪힌 뒤 쓰러졌지만, 동료 선수들의 빠른 응급처치로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 빠른 처치를 해준 동료들에게 고맙다. 지금은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뼈가 붙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U-20 축구대표팀 수비수 정태욱(19, 아주대) 선수는 28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의 건강 상태를 언급했다. 경추(목뼈) 미세 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이었다. 지난 27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아디다스 U-20 4개국 국제축구대회 잠비아와의 경기였다. 후반 35분 상대 선수인 케네스 칼룽가와 공중볼 경함을 벌이던 정태욱 선수는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며 중심을 잃어 떨어졌다. 그라운드에 또 한번 머리를 부딪친 그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눈이 돌아가고 숨을 쉬지 않는 정태욱 선수의 상태를 확인한 동료 선수들은 곧바로 응급조치를 시도했다. 이상민(21, 숭실대) 선수는 정태욱 선수의 입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가 말려드는 걸 막았고, 김덕철 주심은 제대로 기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기도가 확보된 후에는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다른 동료들도 테이핑을 풀고 축구화 등을 벗겨 혈액 순환을 도왔다. 선수들의 1차 조치가 진행되는 동안 대표팀의 의무팀이 합류했고, 정태욱 선수의 상태를 확인한 후 앰뷸런스 진입을 요청했다. 



"빨리 하라고, 씨X 빨리 하라고!"


하지만 앰뷸런스는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봤던 '붉은악마' 응원단의 김슬기 씨에 따르면, 구급대원들은 아무도 준비 상태가 아니었으며 뒷문, 앞문 열다가 차량에 탑승했다고 한다. 의무팀이 사인을 보낸 후 구급차가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가량이었다고 하니, 심각했던 상황에 비해 너무 지체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1초가 급박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 이 시간은 너무도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당장 이승우가 구급차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과 함께 화를 쏟아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문득 경기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던 두 명의 선수가 떠올랐다. 임수혁과 신영록이었다. 지난 2000년 4월 18일, 2루 주자로 나가있던 롯데 자이언츠의 임수혁 선수 갑자기 쓰러졌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는 다리를 떨고 있었다. 지병이었던 심장 부정맥 때문이었다. 아무런 충돌이 없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1루에 있던 테드우드 선수가 달려왔고, 더그아웃에서는 트레이너가 나왔다. 


하지만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서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정확한 지시를 내릴  의료진이 경기장 내에 전무했다. 고작 임수혁 선수의 헬맷을 벗기고 들것으로 옮기는 게 전부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현장 관계자들은 임수혁 선수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그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갔지만, 임수혁 선수는 그라운드의 흙을 밟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참담한 일이었다. 



그리고 2011년 5월 8일, 프로축구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후반 교체 투입됐던 제주 유나이티드의 신영록 선수가 경기 도중 쓰러진 것이다. 부정맥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였다. 이번에는 임수혁 선수 때와는 달랐다. 동료들과 의료진의 빠른 대처(물론 제세동기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던 것은 문제점이었다)로 병원으로 이송됐고, 6월 27일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꾸준한 재활 치료로 일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물론 선수 생활을 더 이상 이어가진 못했지만. 


이 두 번의 경험은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선수들을 단련시켰던 모양이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져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는 절박감과 불안감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지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혹자들은 다금함에 "빨리 하라고, 씨X 빨리 하라고!"라고 외쳤던 이승우가 비속어를 사용했다며 '인성 논란'으로 몰고가려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외면하고, 그저 논란을 위한 논란을 야기하는 얄팍한 시선이 아닐까.


핵심은 그라운드에서 부상을 당한 선수가 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의 늦깎이 대응이야말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의료진의 입장에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규정상 의료진이 그라운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주심의 사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즉각적인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잘못이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 3월 11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렸던 안산무궁화와 FC안양의 경기에서 정다휜 선수는 쿠아쿠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었다. 정태욱 선수와 거의 비슷한 사례라 할 만하다. 당시 골키퍼 박형순 선수는 정다휜 선수의 기도를 확보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김동인 주심은 휘술을 울리며 의료진을 투입시켰다. 이 과정에 소요된 시간은 10여 초 정도였다.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 현장의 모두가 '전문가'가 돼 적절한 조치를 취했던 바람직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라운드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심각한 부상이 야기될 수도 있고, 지병이 발병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 어떤 시점에 그러한 일들이 터질지 역시 알 수 없다. 결국 현장의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선수들의 성숙도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 듯 하다. 하지만 주심(기도 확보는 적절했지만, 앰뷸런스 투입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을 비롯한 의료진들의 미숙함은 여전히 아쉽다. 


큰 대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조직위 차원의 재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겐 이승우의 욕설에 주목할 '여유'가 없다. 다음에도 운 좋게 잘 넘어가리라는 보장이 없다. 선수들이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 그리고 신속하고 정확한 대처를 통해 그들의 '무서움'을 경감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동료를 위해 '욕설'을 했다고 해서 그의 인성을 문제 삼는 건 너무 '코미디'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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