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여고생과 성관계한 경찰관? 은폐·거짓 해명한 조직? 더 나쁜 경찰은 무엇인가?

너의길을가라 2016. 6. 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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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 탑도 무너진다. 그것도 순식간에, 와르르르. 이미지를 쌓아올리는 데 부단(不斷)한 노력과 길고 긴 시간이 소요된다면, 그렇게 어렵사리 쌓아올린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건 정말이지 한순간이면 족하다. 허망하지만 어쩌겠는가. 갑자기 웬 공든 탑 이야기냐고? 다름 아니라 '부산 경찰'의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올해 1월 2일까지 2주 간에 걸쳐 '부산 경찰'은 MBC 예능 <무한도전>과 콜라보를 이뤄 '무도 공개수배' 편에 참여했다. 베테랑 형사들이 출연해 SNS를 통한 시민들의 제보를 수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격전'을 선보였는데, '부산 경찰'의 홍보뿐만 아니라 '경찰'의 대중적 이미지 및 위상을 높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반년'의 영광이었다. 이제 '부산 경찰'하면 '공개수배'가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던) 여고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학교전담경찰관'을 떠올리게 됐다. 이미지의 급전락이자 처참하고 부끄러운 몰골이다. 사건의 개요에 접근하기 전에, 우선 '학교전담경찰관(SPO, School Police Officer)'가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자. 



학교전담경찰관은 '학교폭력 및 청소년 선도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인데, 2012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의 '4대악(에 학교폭력이 들어간다) 척결'과 맞물려 시행됐다.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학교 폭력'을 해결할 방법을 궁리하던 중 '공권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경찰, 그러니까 그나마 '말빨'이 먹히는 경찰을 학교 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다양한 접근 방법'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공식적인 관련 교육 받지 않은 탓에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학교전담경찰관'이 현장에서 얼마나 '유효'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차라리 전문적인 지식과 실무 경험을 갖춘 상담사를 투입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제도'는 시행됐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쓴 흔적들은 포착된다. 시행 초기이다보니 '문제점'은 노출됐고, 급기야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다. 부산의 학교전담 경찰관 두 명이 자신이 담당해오던 여고생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두 경찰관 중 한 명(정 경장)이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은 더욱 뜨거워졌다.


1. 부산 사하경찰서 김 경장(33)은 자신이 담당하던 A양(17)과 방과 후 차 안에서 한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A양은 이 사실을 학교 보건교사에게 알렸고, 보건 교사는 다른 학교전담경찰관(여경)에게 통보했고, 그 학교전담경찰관은 담당 계장에게 보고했다. 계장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김 경장에게 개인 신상을 이유로 사표를 받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2. 부산 연제경찰서 정 경장(31)은 중학교 시절부터 담당했던 여고생과 수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그 여고생이 부산의 한 아동전문기관에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이 알려졌고, 아동전문기관은 정 경장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한다. 이후 정 경장은 "경찰관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냈고, 사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리됐다.



놀랄 일은 맞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인 것도 맞다. 하지만 '밀접한 관계'를 맺게 돼 있는 현재의 학교전담경찰관 제도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경찰은 앞으로 여고에는 여경이, 남고에는 남경이 배치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성을 갖춘 '정신과 의사'도 내담자(來談者)와 부적절한 관계(혹은 사랑)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갑자기 '전문가'가 돼버린 학교전담경찰관은 어떠하겠는가.


청와대도 그러하고, 정치권 등에서 反헌법적이거나 매우 심각한 (불법적)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마구잡이로 가져다 써서 그 의미가 너저분해졌지만, 이번 일이야말로 일부 경찰관들의 '개인적인 일탈'이라 볼 수 있다. 정 경장의 경우에는 성관계를 가진 여고생과 '연인 관계'였고, 아내와는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인지 성관계의 강제성을 부인하기 위한 진술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내막이 어떠하든 간에 위의 두 학교전담경찰관이 저지른 일이 '부적절'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작 문제는 그 '개인적인 일탈'을 접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사표를 수리한 일선 경찰서와 사실 관계를 미리 파악하고도 '쉬쉬'했던 부산 경찰청과 경찰청(본청)의 부적절한 대응이다. 은폐, 허위 보고, 거짓 해명으로 점철된 경찰 조직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어린 학생들을 돌봐야 할 경찰관이 책무를 어기고 부적절한 행위를 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비위 조사를 받는 사람은 의원면직이 될 수 없으므로 면직을 취소하도록 지시했다." (강신명 경찰청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은 면직된 2명의 경찰관에 대해 면직처분을 취소하는 조치를 내렸다. 또, 퇴직금을 환수 또는 지급되지 않도록 공무원연금공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부산청에 조사위원 6명을 파견해 감찰을 벌이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 차장은 "감찰대상에 실무진을 포함해 저와 이상식 부산청장, 강신명 청장도 포함할 것"이라 밝혔다. 대대적인 감찰이 시작됐지만, 아무래도 뒤늦은 감이 있다.



제도는 허점이 있고, 사람은 실수(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고쳐나가면 되고, 그럴 수 없다면 없애버리면 된다. 사람의 경우에는 징계를 하면 될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제도'와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반응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제도'와 '사람'을 운용하고, 관리해야 할 '조직' 자체가 썩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조직적인 은폐가 이뤄지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동력이 없는 조직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


경찰이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은 '본분을 망각한 직원'이 아니라 '문제를 인지하고도 해결 능력을 잃어버린 조직의 구조적 모순'이어야 한다. 경찰이 걱정하고 반성해야 할 '타이틀'은 '여고생과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진 학교전담경찰관'이 아니라 '은폐, 허위 보고, 거짓 해명을 일삼은 추잡한 조직 그 자체'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가장 이르다. 부디 제대로 변화하길 바란다. 실추된 이미지를 재건하고, 다시 '제대로 된' 탑을 쌓아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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