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진실 알리기를 포기한 것인가?

너의길을가라 2016. 6. 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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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관심'이고, '예산=의지'다. 특정 분야에 예산을 배정한다는 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이자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반대로 예산을 삭감한다는 건, '발을 빼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예산안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임무' 중 하나인데, 국민의당의 박주선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2017년 예산안에는 '의심스러운' 예산 삭감 내역이 눈에 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기념사업' 예산 41억 6,500만 원 → 28억 6,6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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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단체 국제공조활동 및 기념사업 지원' 6억 5,000만원  → 3억 5천만원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4억 4,000만원  0원

 '교육콘텐츠 제작비' 2억원  0원

● '국제학술심포지엄비' 1억원  0원

●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비' 3억원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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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기념사업' 예산을 41억 6,500만 원에서 28억 6,600만 원으로 줄였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예산을 증액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생뚱맞게 감액이라니 의아하기만 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둘러싼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이 오리무중인데, 정부는 왜 예산을 줄이는 결정을 한 것일까?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민간단체 국제공조활동 및 기념사업 지원' 예산의 대폭 삭감을 비롯해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 추진', '교육 곤텐츠 제작비', '국제학술심포지엄비',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비'를 '전액 삭감'한 내역이다. 뭔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지금 나열한 예산들을 하나의 '테마'로 묶어보면, '위안부 진실 알리기' 쯤 될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진실 알리기를 포기한 것인가"


이런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하다. 박 의원은 "위안부 관련 예산이 줄줄이 삭감됨에 따라,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는 노력이 차질을 빚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와 무관하게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던 말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답을 들어보자. 강은희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은 "유네스코 기록물 등재는 민간에서 추진하는 게 기본 정신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더 이상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간에서 추진하는 게 기본 정신이다? 사실일까? 강 장관의 답변은 기존의 여가부가 취해왔던 태도와는 180도 다른 것이다. 오히려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여가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던 사업이었다.


2015년 여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기여한다"는 내용과 함께 "2017년 등재 목표"라는 구체적인 시한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다시 합리적인 의심을 가동할 때다. 지난해 12월 28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가 있었던 한 · 일 외교장관 회담의 영향은 아닐까?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합의 내용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표현을 둘러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기시다 외무상은 회담을 마친 직후 일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에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12 · 28 한일 협의를 기점으로 여가부의 '행동'이 달라졌는데, 그 변화를 실질적으로 경험했을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정부가 12월 28일 합의 이후 사무국에서 유네스코 사업 추진단도 빼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여가부는 "한 · 일 합의와는 상관없는 결정"이라 해명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은 또 다시 시작된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의원은 일본 중의원 회의 속기록을 입수했는데, 거기에는 "일본 정부가 한일 위안부 협상 내용 중에 '우리 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재를 지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포함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정부의 위안부 관련 예산 삭감 및 태도 변화가 아주 쉽게 설명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이 진행하는 SNS 방송 '원순씨의 X파일'에서 "당연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하지 않는다고 하니 서울시라도 나서서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서울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육성 녹음, 영상 기록, 사료, 자료를 모두 수집해 정리하는 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것을 모아 정부가 하지 않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본분을 망각한 정부를 대신해 서울시가 나서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위안부와 관련된 사안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챙겨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제는 정부가 여전히 '진실'을 감추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해명을 늘어놓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거짓말'일지 모르는 것들로 말이다. 국민과의 '신뢰' 관계가 무너진 정부에게 미래는 없다. 아니, 현재를 지탱할 힘조차 없다. 


다시 한번 물어야겠다. "대한민국 정부는 위안부 진실 알리기를 포기한 것인가?" 이번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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