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손가락 욕' 김민준을 위한 변론, 알 권리를 남용하지 말라!

너의길을가라 2014. 6. 2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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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외딴 섬처럼 돌출된 사건으로 보일지라도, 알고 보면 켜켜이 누적된 원인들이 있는 법이다. 세월호 참사도 그러했고,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하루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김민준 손가락 욕 사건'도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김민준 손가락 욕 사건'의 간단한 개요


사건의 개요부터 정리해보자. 지난 28일 오전 <뉴스엔>의 임세영 기자가 인천 공항에 취재를 나갔던 모양이다. '2014 스타 위드 케이팝 라이브 인 광저우'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을 찾은 아이돌 가수(슈퍼주니어, 2PM, 빅스 등)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자리에는 <뉴스엔> 말고도 6개의 언론매체 기자들이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 나온 팬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아이돌 가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던 중에 김민준이 나타났고, 기자는 '습관대로' 그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었던 아이돌 가수의 팬들도 덩달아 사진 촬영 대열에 합류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항에 왔다가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김민준은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동안 누적됐던 스트레스 혹은 기자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던 것일까? 김민준은 점잖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차분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다소 과격하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말았다. 그것이 이른바 '손가락 욕'이다. 



화가 난 기자의 의도된 모자이크와 김민준 소속사의 사과


이 손가락 욕을 정면에서 마주한 <뉴스엔>의 임세영 기자는 상당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그래서 '잘 걸렸다, 너 한 번 당해봐라'는 심정으로 기사를 작성했던 것 같다. 아니면 그 순간에도 '이거 조회수 좀 올라가겠는데?'라는 냉철한 판단을 했을까? 어쨌든 임 기자는 '김민준 손가락욕 '난감한 행동''이라는 제목과 함께 김민준의 손가락 욕을 옅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 상태로 기사로 내보냈다. 


이후에 <뉴스엔>도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후속 기사들에서는 모자이크에 보다 신경을 써서 손 전체를 가렸다. 한편, <티브이데일리>는 아예 더욱 노골적으로 '손가락 욕'을 내보냈다. 어린 팬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욕을 한 김민준을 비난하면서, 그러한 손가락 욕을 거의 사실적으로 '인터넷'에 띄우는 기자의 태도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뉴스엔>은 대놓고 김민준을 비난하고 나섰고, <티브이데일리>와 같은 연예 관련 매체들은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듯 하면서도 '섣부른 오해', '적절치 못한 모습'등의 표현을 통해 김민준을 비꼬기 시작했다. '손가락욕' 김민준, 같은 시간 출국한 2PM은 '환한 미소'와 같은 기사를 쓰는 <티브이데일리>의 속내는 뻔한 것 아닌가? 김민준의 행동이 '적절치 못한 모습'이었다면, 카메라를 무기 삼아 무조건 찍어대는 기자들의 행동은 '적절한' 것인가? 누군가를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반성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촬영에 무방비한 상태의 원치 않던 취재, 기자는 잘못이 없나?


논란이 커지자 김민준의 소속사인 벨액터스 엔터테인먼트는 "김민준은 금일 오전 개인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려던 상황이었다. 촬영에 무방비한 상태였고 원치 않던 취재였다 하더라도 공인으로서 변명할 여지없이 적절치 못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신중치 못한 행동으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납작 엎드렸다. 


소속사 측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연예 관련 매체들은 해명의 앞 부분은 덜어내고 '신중치 못한 행동으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는 뒷부분만 발췌해서 기사로 내보내고 있다. 정말이지 야비하고 꼴불견스럽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촬영에 무방비한 상태였고 원치 않던 취재'였다는 해명의 내용이다. 소위 '공항 패션'이 하나의 컨텐츠로 자리잡으면서 소속사가 기자들에게 일정을 알려주고, 기자들은 소속사를 통해 관련 정보를 빼내는 것이 일상화됐다. '2014 스타 위드 케이팝 라이브 인 광저우' 공연에 참석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경우에는 소속사와 언론 간의 조정이 된 상태였을 것이다. 



- 임세영 기자의 기사, 주다영 '과감해도 너무 과감한 공항패션' -



"요즘에는 공항 출국 스케줄을 알려주지 않으면 인터넷 매체에서 항의가 엄청나게 들어온다. 그래서 미리 공식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 A 연예 기획사 대표 -


 "미리 출국 스케줄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문의가 오면 숨기지 않고 알려주고 있다" - B 가요 기획사 관계자 -


"기자님들 바쁘신 일정 중에도 부디 와주셔서 ○○○의 멋진 모습 담아주시길 부탁 드리겠다" - 명품브랜드 C사 -


- <연합뉴스>, 스타들의 '공항사진', 알고보니 '광고사진' 에서 발췌한 내용 - 


다시 말해서 '마음껏 찍어도 좋다'와 같은 합의 말이다. 소속사 측에서는 홍보와 함께 '공항 패션'을 통해 협찬 상품들을 홍보하고, '기레기'들은 손쉽게 기사를 쓸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것이다. 소위 '공항 패션'을 다룬 '공항 사진'에는 이와 같은 암묵적 거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무심결에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올라온 이런 기사를 '클릭' 하는 네티즌만 '바보'가 되는 게임이라고나 할까? 


<뉴스엔>에서는 김민준이 다짜고짜 손가락욕을 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취재진들은 못 들었다고 했지만) 사진 취재에 대해 거부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공연에 참석하는 아이돌 가수와 달리 김민준은 언론과 아무런 조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기자에게 거부의사(기자들이 봤든 안 봤든 간에)를 했음에도, 기자가 계속 카메라를 들이밀자 순간적인 격분을 참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이후의 일들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네티즌은 양 갈래로 나뉘어졌다. 김민준을 비난하는 쪽과 기레기를 비난하는 쪽으로 말이다. '회색톤'으로 바라보자면, 보다 냉철하고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대응을 한 김민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24시간 내내 언론과 팬들에 노출되어야만 하는 그 피로감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아니, 피로감 정도가 아니라 노이로제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쩌면 공포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자들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되묻고 싶다. 어째서 그런 것(사생활의 노출)을 감수해야 하는 거냐고 말이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사생활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란 말인가? 또, '그 정도'라고 말하는 그 무신경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묻고 싶다.


'국민의 알 권리'는 연예인 사생활 침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엔 기자를 속된 말로 '기레기'라고 부른다. '기자 + 쓰레기'의 준말이다.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는 벌써 오래됐다. 정덕현, 김교석 등 고민이 담긴 비평 글을 쓰는 칼럼리스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연예 매체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그 내용들을 고스란히 옮기거나 허접한 감상문을 쓰는 것이 주 업무다. 또, 연예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애 엄마(유부녀) 맞아?', '짧아도 너무 짧은 치마(핫팬츠)', '볼륨감 돋보이는 8등신 몸매', '각선미 대결(아찔한 각선미)', '짧은 원피스가 신경 쓰여' 따위의 기사를 올리는 것이 기자들이 하는 일이다. 이런 이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것이 썩 어색하게 들리진 않는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기레기'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리하고 있으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적 ·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정보를 자유롭게 알 수 있는 권리,또는 이러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국민의 알 권리'가 이토록 함부로 남용되는 분야가 또 있을까? 정부나 거대 기업 등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정보를 은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의 알 권리'가 강조됐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도대체 연예인이 공항에 나타나서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가 '국민의 알 권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유린하고 있는 '기레기'들이야말로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섣부른 오해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오마이뉴스>의 이선필 기자는 '손가락을 든 김민준과 카메라를 든 기자 중 누가 더 무서운 존재였을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분명히 답할 수 있다. 단언컨대, 후자라고. 


마지막으로 '기레기'로 전락한 기자님들과 그들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는 연예 기획사 대표님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기자님들, 이번 기회에 공항을 끊는 건 어때요? 그리고 소속사 대표님들도 '공항 패션'으로 장사 그만 하시죠? 결국 장소적 의미의 '어디까지'와 취재 범위란 의미에 '어디까지', 이 두 가지 '어디까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물론 자본에 종속된, 왜곡된 '알 권리'에 취한 우리 사회가 그런 수준의 논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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