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JTBC의 자극과 KBS의 변화, 각성한 언론이 국민을 잠에서 깨우다

너의길을가라 2014. 6. 2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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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문제는 언론이야." 지난 몇 년동안 그 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지겹도록 들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질릴 정도로 들었지만 또 다시 그 말을 들어야 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면 갈수록 절망적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언론은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앵무새' 역할을 자처한 공영방송들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탄식했고 절망했으며 좌절했다. '언론만 제 역할을 하면 활로가 보일 텐데, 언론만 똑바로 선다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정답'을 알고 있는데, 상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반대로 그 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걱정 마, 언론만 틀어쥐고 있으면 돼"라고 말이다.


팟캐스트를 비롯한 대안 언론이 만들어지고, 국민TV가 개국하긴 했지만 역시 한계가 뚜렷했다. 힘겨운 싸움을 계속했던 대안 언론들을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매체의 특성상 듣는 사람만 듣는 '우리끼리'의 성격이 지나치게 강했다. 다시 말해서 확장성이 없었다. 결국 대안 언론은 '대안'이었을 뿐이다. TV라는 매체의 전파성과 확장성, 그리고 편리성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듯 '찻잔 속의 태풍'만 요란한 지루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던 무렵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손석희 앵커가 JTBC 보도국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었다. 언론인을 비롯해서 많은 시민들이 손석희의 JTBC 행을 비판했다. 김현석 전 KBS 새노조 위원장의 비판이 대표적이었는데, 바로 "종편 가봐야 역할 별로 못할 거 같아서 기대할게 없다고 생각한다. MBC에서 쌓은 이미지를 내다 판 장사"라는 것이었다. 다수의 언론인들을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손석희도 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도 자본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 꿇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또, 차라리 <뉴스타파>나 그 외의 대안 언론을 도와주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던 것은 손석희 개인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기보다는 결국 '자본'과 '시스템'이 사람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약 70년 전 르 몽드 지의 창간자인 뵈브 메리는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을' 다루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희들의 몸과 마음도 그만큼 가벼워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 지난 2013년 9월 16일 JTBC <뉴스9> 첫 방송에서 손석희 앵커가 시청자에게 했던 다짐 -


필자가 손석희 앵커의 JTBC 행을 지지했던 까닭은 그가 자본과 겨뤄 이길 것을 바라서가 아니었다. 또, 대한민국 언론계를 몽땅 바꿔놓길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손석희라는 인물이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뉴스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뉴스를 보는 행위를 고리타분하고 멍청한 짓으로 여기고 있는 시점에서 손석희의 역할은 사람들의 눈을 다시 뉴스로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또, '앵무새'로 전락한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에게 '이것이 뉴스다'라는 자극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세월호 참사'는 너무도 불행한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언론이 MB 5년과 박근혜 정부 1년, 도합 6년이라는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는 중대한 사건이기도 하다. JTBC의 존재감은 돋보였다. 공영방송들은 '전원 구조' 등의 오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했던 당시 편집을 통해 박수소리를 집어 넣는 등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고, 부정확한 정보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 가운데 손석희 앵커는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진정한 언론인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JTBC <뉴스9>는 흔들림 없이 '정론'을 펼쳤다. 다른 공영방송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뉴스를 보도했다. 지금까지도 JTBC <뉴스9>는 뉴스의 첫머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그와 관련해 '왜' 라는 물음을 매일마다 던지고 있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손석희의 JTBC 행에 비판적이었던 김현석 전 KBS 새노조 위원장도 이제는 생각을 바꾼 듯 하다. 그는 "비판적으로 봤죠. 그러나 지금까지를 보면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올바른 저널리즘이 뭔지 보여준 것이잖아요"라고 손석희의 JTBC 행을 재평가했다. 또, "JTBC가 이런 방송을 끝까지 갈 것이냐 보다 JTBC가 보여준 자극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것 받아서 KBS가 원칙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JTBC가 보여준 자극에 방점을 찍으면서 앞으로 손석희 앵커의 선전을 희망하기도 했다. 


JTBC가 보여준 자극과 그것을 받아서 KBS가 원칙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계기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온누리 교회 강연 내용을 KBS가 보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SBS가 보도를 접었던 것에 비해 KBS가 보여준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청와대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던 길환영 사장의 사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JTBC <뉴스9>를 통해 언론인으로서의 자각과 함께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을 KBS의 구성원들이 비로소 '내압'이 없어지자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아갔다. 



김현석 전 위원장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보도한 것과 관련해서 "이건 KBS 영향력 때문이라기보다 문 후보자의 발언이 워낙 문제가 있었고 말이 안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산된 것이지 KBS의 영향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겸손을 표하긴 했지만, 사실 KBS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 


지난 4월 29일 JTBC <뉴스9>의 시청률은 5.401%로, 같은 날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5.4%)를 살짝 앞질렀다. 물론 그 숫자가 최대치였다. 이러한 숫자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KBS <뉴스9>에 비하면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KBS <뉴스9>의 시청률은 평균 15~20% 정도이다. 대략적으로 따져봐도 3~4배에 달하는 수치다. 



물론 JTBC <뉴스9>의 경우에는, 다음과 네이버를 통해 인터넷 생중계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시청률만으로 그 파급력을 판단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순수한 파급력을 따지면 KBS를 따라갈 수가 없다. 


지난 20일 <한국갤럽>이 문창극 후보가 신임 총리로 적합한지 여부를 놓고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단지 9%만 '적합하다'고 응답했다. 무려 64%는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더우 흥미로운 것은 박 대통령의 기존 지지층에서도 '적합하지 않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는 것이다. 역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박 대통령의 기존 지지층마저도 등을 돌렸던 이유는 역시 KBS의 보도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김 전 위원장의 말처럼 워낙 심각한 문제였던 까닭도 있지만, 그러한 '심각한 문제'가 지금까지 한 두가지였던가? 결국 공중파 뉴스들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이를 알 길이 없는 시민들로서는 그 어떤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데 무슨 반응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청률 15~20%에 달하는, 그것도 주 연령층이 (다양하긴 하지만) 50대 이상인 KBS 에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발언 내용을 보도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언론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물론 '언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것은 청와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KBS를 장악하는 것이 '정권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박근혜 정부가 다음 KBS 사장으로 어떤 인물을 임명할지는 뻔한 일이다. KBS를 다시 잠재울 인물을 통해, 다시금 '나팔수'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KBS 사장 선정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정부의 언론 장악 야욕과 이로부터 언론을 지켜내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다. 



- 제이티비시에 처음 올 때 믿어달라고 했다. 그 약속은 유효한가? 


"유효하다. 누구나 저널리스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이 구현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제시하는 정론의 저널리즘, 저널리즘의 기본이라는 것이 여기서 구성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의 다짐을 매일매일 되새기고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 2013년 10월 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 내용 -


손석희 앵커는 지금도 당시의 다짐을 매일매일 되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손석희 앵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인들이 모두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자 책임이다. 또, 우리는 그러한 언론과 언론인을 응원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언론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이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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