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이스탄불 여행기] 7. 나만의 '예술의 날'을 기획하다

너의길을가라 2018. 1. 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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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인디애나 존스>의 느낌이라면, 신시가지는 <미션 임파서블>이랄까? 


물론 과장된 비유지만, 그만큼 두 곳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구(舊)시가지 여행은 사실상 유적 탐사에 가깝다. 고대와 중세 시대를 탐방하는 역사학자가 된 기분이다. 반면, 신(新)시가지는 그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톱카프 궁전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당연히 신식이고 훨씬 웅장하다.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갈라타 탑조차도 현대적인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여행의 성격도 판이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 내의 카페에서 바라본 보스포루스 해협 -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 책자와 구글 지도를 보면서 신시가지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끌리는 곳'을 체크해 봤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군사 건축물 '루멜리 히사르'와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베벡(Bebek)'은 빼놓을 수 없었다. 유럽풍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베벡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있다. 어차피 두 곳은 근거리에 있어 한꺼번에 다녀올 수 있을 듯 싶었다. (루멜리 히사르는 입구까지 갔지만, 일정과 체력적인 문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Istanbul Museum of Modern Art), 문화복합공간 솔트 갈라타(SALT Galata), 페라 박물관(PERA museum) 등이 눈에 띠었다. 이 세 곳은 (내가 구입한) 여행 책자엔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패키지로는 갈 수 없는 장소였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일정을 하루 통째로 비워두고, 나만의 '예술의 날'로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제법 근사한 하루가 될 거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마침내 그날의 아침이 밝았다.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으로 정했다. 숙소 근처인 카바타스(Kabatas) 역에서 T1을 타고 톱하네(Tophane) 역까지 간 후 도보로 이동했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아서 구글 지도와 표지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해야 했는데,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공장을 개조한 듯한 외관은 전혀 미술관스럽지 않아서 미술관을 찾는데 조금 헤맸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외관이야말로 현대 미술관이라는 이름과 개념에 적확히 부합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길답게(?) 중간에 작은 공원에서 설치 예술가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판지로 집을 지어놓고 호기롭게 'Cardboard museum'이라는 이름을 써놓았다. 관심을 보였더니 굉장히 반가워하며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내부를 볼 수 있냐?"고 묻자 흔쾌히 안쪽을 구경하게 해줬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순 없었지만, 괴짜의 괴짜스러운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관으로 가기 전에 뭔가 독특한 경험과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미술관 외부에는 다양한 설치 예술이 전시돼 있었다. 밭을 구현해 두고 소의 쟁기질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는데, 역시 난해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미술관 내부에는 다양한 미술 작품들이 펼쳐져 있었다.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공자가 아니라 한계가 있다. 그저 '보는 것', 그 행위 자체에 만족한다. 어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곳에 가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좋아서, 라는 말이 대답이 될까. 잘 모르는 미지의 것을 접하는 순간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페라 박물관은 갈라타 탑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Meşrutiyet Cd. 에 위치해 있다. (참고로 Cd는 Caddesi의 약자로, 거리라는 뜻이다.) 이스티클랄 거리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그곳을 기점으로 길을 찾아가는 게 좋다.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찾아가기 쉽진 않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므로 큰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길을 헤맬 염려도 있다. 실제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가 '어? 여기 아니야?'라며 다시 돌아왔다. 그래도 신시가지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재미가 있다. 


페라 박물관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893년 건축돼 호텔(Hotel Bristol)로 사용됐던 건물이 지금은 박물관이 됐다. 『오리엔탈 특급살인사건』의 저자로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가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페라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으로 이뤄져 있다. 1~2층에는 이스탄불의 과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회화, 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는데, 오리엔탈 회화를 비롯해 소아시아 지방의 저울과 저울추 등을 볼 수 있다. 3~5층은 기획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으로 시끌벅적였던 구시가지와는 달리 신시가지(의 갈라타 탑과 같은 유명 관관지를 제외하면)는 확실히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이스탄불 현대 박물관이나 페라 박물관에선 훨씬 더 도드라졌다. 당연히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완벽히 낯선 곳이 주는 자유로운 느낌을 좋아하는 터라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해외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라고 할까. 같은 세대의 기운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관광지의 느낌에서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테마를 정해 여행의 일정을 짰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나만의 '예술의 날'은 내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스탄불 현대 미술관과 페라 박물관을 들리기 전에 솔트 갈라타(SALT Galata)를 방문했었는데, 그 곳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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