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 13. 지베르니, 당신이 꼭 가봐야 할 최고의 풍경

너의길을가라 2018. 5. 2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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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파리 여행기'를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예외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번 본 영화는 다시 보지 않고,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 이상한 고집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들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경제적 사정이나 일정 등 이런저런 조건이 갖춰지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떠날 수 있는 해외여행인지라 굳이 갔던 곳을 또 갈 여유가 없었다. 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한 여행끈 짧은 여행자에 불과하니까. 


2016년 11월에 처음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으니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파리에 가게 됐다. 그 사이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한번에 묶어 다녀왔고, 뜨거운 햇볕이 작열하는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왔다. 이번엔 내심 이탈리아 로마를 염두에 뒀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결국 파리였다. 물론 벨기에를 세트로 묶는 보험(?)도 들어뒀다. 일종의 절충이라고 할까. 



첫 번째 파리는 겨울이었다. 기온이 낮아 제법 쌀쌀했고, 체감온도 역시 낮았다. 아예 두꺼운 점퍼를 입었었다. 추위에 떨면서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비수기로 접어드는 시기이다 보니 여행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관광지는 가는 곳마다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줄을 서지 않아 반가웠지만,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없어 심심했다. 그래도 저 유명한 명소와 예술품들을 독점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두 번째 파리, 그러니까 5월의 파리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있었고, 그 안에 있던 나도 덩달아 생기가 돌았다. 햇살은 밝고 따스했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파리는 매 순간 빛났고, 스스로를 빛냈다. 마치 ‘이게 내 본연의 모습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느 곳이나 활기가 넘쳤다. 5월의 파리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두 번째는 또 다른 의미의 첫 번째였다. 가보지 못했던 곳을 들릴 여유가 생겼고,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곳을 다시 챙길 꼼꼼함도 생겼다. 다시 들린 몽마르트르 언덕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크레쾨르 성당 주변 카페들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그 앞은 거리의 화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맑은 날의 베르사유 궁전은 화사함의 차원이 달랐다. 정원은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웠다. 루브르와 오르세의 분위기는 몇 곱절 뜨거웠다. 



생각지도 않게 미완의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를 이어가게 됐다. 번호는 13이다. 결국 불완전하게 끝나겠지만, 그래도 몇 개의 글을 더 보탤 수 있게 돼 개인적인 아쉬움이 씻기는 기분이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 '지베르니(는 파리의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지만, 파리에서 시작해 파리로 돌아와야 하고, 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와 '오랑주리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지베르니(Giverny)와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은 프랑스 인상파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인상파라는 명칭이 그의 작품인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됐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지베르니는 파리에서 약 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모네가 거주하며 작업을 했던 곳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모네의 걸작인 <수련(les Nymphéas)> 연작이 전시돼 있다.


지베르니에 가게 위해서는 손쉽게 현지 투어에 참여하는 방법이 있다. 몽생미셸에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현지 투어를 신청했다. 차로 달려서 4시간 30분~5시간에 달하는 거리가 부담스러웠고,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지베르니는 기차로 50분~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어 부담이 적었다. 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싶은 도전정신이 샘솟았다. 



출발점은 생 라자르 역(Gare saint-lazare)이다. 지베르니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있으면 좋겠지만, 베르농(Vernon) 역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살짝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여정이다. 그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 만큼의 만족감을 느끼게 될 테니 섣부른 손익판단은 금물이다. 성수기 무렵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표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끊어두는 센스가 필요하다. 


성수기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다음날 06:54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다. 어떤 여행 책자에는 45분이면 된다는 설명도 있는데, 베르농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됐다. 돌아오는 기차는 50분 정도 걸렸으니, 완전히 틀린 설명은 아니다. 베르농 역에서 내려 정문으로 나가면 소박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50m쯤 가면 마을 버스 타는 곳이 있다. 표는 버스 기사에게 사면 되니 당황하지 말자.


새벽에 기차를 타고 떠나왔건만, 버스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남은 상황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여유는 배르농 아침 산책을 하는 걸로 채우기로 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 기사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다른 기사들과 수다를 떤다. 다음 열차의 손님들을 기다렸다가 출발하려는 심산일까.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더 지났을까. 드디어 출발하는 버스, 앞쪽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외친다. ‘thanks god!’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15분이 훌쩍 지났다.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면서 이미 벌어졌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곳의 초록은 농도부터 다르다. 전날 밤 일기예보를 보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녹아버린 지 오래다. 햇살은 더할나위 없이 따스하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르다. '이래서 지베르니, 지베르니 하는구나!' 감탄이 그치지 않는다. 지베르니에 오다니, 스스로 믿기지 않는 걸음을 떼고 있었다. 


지베르니는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넉넉히 10분이면 인상주의 미술관에 닿고, 거기에서 또 10분이면 모네 생가에 다다른다. 가는 길목마다 꽃과 나무로 이뤄진 천상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다. 골목이 하나같이 예쁘고, 그 골목의 터잡은 집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이런 곳에서 살면 그 어떤 걱정도 없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인상주의 미술관은 굳이 들리지 않아도 좋다. 그때마다 특별전을 열어 전시를 하는 곳인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일본의 인상주의라는 주제로 전시가 한창이었다. 어차피 목적은 모네이기 때문에 가볍게 패스했다. 자, 드디어 모네의 생가다. 아침이라 줄이 그리 길지 않다. 앞쪽에 선 가족들의 수다가 귓가를 파고들지만, 상쾌한 기분에 이조차도 용납하기로 한다. 입장료는 9.5유로. 


계단을 내려가면 곧바로 기념품 샵이 나온다. 특이한 구조다. 밖으로 나가면 드디어 모네의 정원과 집이 나타난다. 그가 43세인 1883년 지베르니를 발견하고 가족들과 함께 정착해 여생을 보냈던 곳. 1926년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모네는 이곳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목조로 된 생가와 정원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연못으로 가는 길이 나타난다. 설렌 가슴이 또 한번 설레기 시작한다. 




연못은 또 다른 세계였다. 모네의 그림 속에 실제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된 듯 하다. '아,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 예술적 영감이 떠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좀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면 좋았겠지만, 오후에 접어든 지베르니는 이미 관광객들로 가득 차 버렸다. 한걸음 내딛기도 버거울 정도였다. 어차피 미리 예매해둔 기차 시간이 다가와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다. 


만약 여행 기간이 넉넉하다면 하루를 온종일 지베르니에 할애하는 것을 추천한다. 좀더 느긋하게 모네의 공간을 거닐어 본다면, 마치 잠시나마 모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파리로 돌아와서 곧바로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콩코르드(Concorde) 역에서 내렸다. 걸어서 5분이면 된다. 첫 번재 여행에서 이미 들렀던 곳이지만, 지베르니를 다녀온 그 감각을 살리고 싶었다.




두 눈에 가득 담았던 광경, 두 발로 직접 거닐었던 그 공간을 담은 그림을 빨리 보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정원과 연못이 그림 속에 펼쳐져 있었다. 그 연속성이 작품에 대한 감동을 확장시켰다. 이곳에 있는 <수련> 연작 패널은 모네가 76세부터 백내장으로 작업이 어려워진 81세까지 그린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심정으로 그 풍경을 담았을까. 


어떤 소설가가 그랬다. 여행을 가면 그 곳과 관련된 책을 읽으라고. 역시 '스토리'가 중요하다. 파리를 가면 (책도 좋지만) '그림'을 봐야 하고, 그 그림을 더욱 잘 느끼려면 그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보는 게 좋다. 첫 번째 여행에서 그런 시도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곳이 파리라면 더욱 그렇다. 시내에만 해도 볼거리가 차고 넘치니까. 그래서 파리는 두 번 가면 더 좋은 곳이다. 아니, 어쩌면 가면 갈수록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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