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8)

너의길을가라 2015. 11. 2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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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늑하고 풍성한 곳에서 다툼 없이 살고 싶다. 낯설고 적대적인 세계를 인간의 안쪽으로 귀순시켜서, 그렇게 편입된 세계를 가지런히 유지하려는 인간의 꿈은 수천 년 살육 속에서 오히려 처연하다. 세계를 개조하려는 열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무기의 꿈과 악기의 꿈은 다르지 않다. 철제 무기의 경이로운 날카로움을 정련해가던 가야의 마지막 날들에, 우륵은 가야금을 완성한다. 그의 조국은 한 줄기 산세와 한 줄기 물길에 기대어 있던 부족구가였다. 위태로운 조국의 마지막 순간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조국을 떠난다. 그는 적국인 신라의 진흥왕에게 투항했다. 그가 버린 조국의 이름은 그의 악기에 실려 후세에 전해졌고, 그의 악기는 신라 천년의 음악의 바탕을 이루었다. 진흥왕의 팽창주의는 그가 남긴 순수비에 적혀 있는데, 아마도 역사 속에서, 진흥왕의 무기와 우륵의 악기는 비긴 것 같다.


- 김훈, 『자전거 여행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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