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버락킴의 오래된 공책 (135)

너의길을가라 2015. 11. 1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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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사회는 금지 명령을 발하고 당위('해야 한다')를 동원하는 규율 사회와 반대로 전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생산성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해야 함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해야함은 곧 할 수 있음으로 대체된다. 착취를 위해서는 동기 부여, 자발성, 자기 주도적 프로젝트를 부르짖는 것이 채찍이나 명령보다 더 효과적이다.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명령하고 착취하는 타자에게 예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체는 자기 자신을, 그것도 자발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착취자는 피착취자이기도 하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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