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國境) : 나라와 나라 사이의 경계
우리는 '국경'을 모른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라는 지형학적 위치, 거기에 유일하게 뚫려 있(다는 표현은 육지를 강조하는 고전적인 지리관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대륙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로 새기도록 하자)는 북쪽은 '휴전선'이라는 장벽이 엄중히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그 '선'에 가닿을 수 없다. 아주 멀리서나마 바라볼 수는 있지만,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군인이 돼 철책을 지킨다면 모를까.
그렇다고 해서 그 선을 국경이라 말하긴 어렵다. 회원의 자격을 '국가'로 규정한 유엔 헌장에 따르자면, 북한 정부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할 여지가 있지만, 이는 헌법적으로 볼 때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우리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될 텐데, 북쪽을 통해 그 곳에 닿을 수 없으니, 그 '경계'를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그 '경계'를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강을 건너 만주를 넘나들었던 선조들의 이야기는 글로 접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무용담'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국경'과 함께 쓰이는 표현들이다. 우리에게 국경은 '건너'거나 '넘어'야 하는 것이었다. 혹은 '통과'하거나. 아마도 앞서 살펴봤던 지형학적 위치, 또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 것이다.
지금에 와서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마음껏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유럽을 떠올리면, 우리는 지나치게 제한적인 환경과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아니 그 실체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군사 분계선이라는 벽에 막히고 갇힌 채 말이다. 그만큼 사고의 유연성과 확장성도 '막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무리한 유추는 결코 아니리라.
그래서 궁금했다. 대중 교통, 이를테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동안의 여행들이 대체로 한 (국가 속의) 도시를 탐험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일정 속에 4개국을 포함시켰다. 나름대로 큰 도전이기도 했다. '국경'이라는 개념을 실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내가 과연 그 '넘나듦'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것도 처음 들린 낯선 땅에서 말이다.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Praha Florenc)
이번 여행에서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 드레스덴, 프라하에서 (오스트리아) 빈, 빈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돌아오는 여정까지 더하면) 총 6번 국경을 '넘었다'. 평생 한번도 넘지 못한 국경을 무려 6번 씩이나 넘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 기차를 이용했지만, 프라하에서 드레스덴까지는 버스를 탔다. 스튜던트 에이전시(Student Agency)라는 체코의 버스 회사에 대한 호평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꼭 한번 탑승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빈까지 버스를 타면 거의 5시간이 걸리는데, 그 노선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버스보다는 기차가 안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Praha Florenc)에 하루 먼저 들러 표를 예약했다. 모든 교통 편은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지만, 성수기가 아닐 때에는 현지에서 구입해도 충분하다. 또, 상황에 따라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게 여행이다보니 '여유'를 두기 위해 그리했다.
어차피 위치를 정확히 파악둬야 당일 헤매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 발걸음이 헛되다 생각되진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점찍어 뒀던 09시 30분 표를 예약했다. 프라하에서 드레스덴까지 소요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버스로) 이동할 만 했다. 가격은 300코루나, 한화로 13,000~14,000원 정도였다. 우리로 치면 '우등' 버스 쯤 되는 준수한 시설을 갖췄다.
프라하 중앙역(Hlavni nadrazi) 플랫폼
빈 중앙역(Wien Hauptbahnhof)
프라하에서 빈까지는 기차로 4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버스 표를 예약하던 날 프라하 중앙역(Hlavni nadrazi) 들러 역시 미리 표를 구입했는데, 갈 때(17일)와 돌아올 때(20일)의 표 '가격'이 달랐다. 빈으로 가는 기차는 800코루나(29유로)였는데, 프라하 행 기차는 662코루나(24유로)에 불과했다. '왜 차이가 나는 걸까?' 처음엔 신기했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화폐를 쓰고 있는 국가에서 (같은 동선이라 하더라도) 기차 표 가격이 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빈에서 부다페스트로 이동할 때도 왕복 티켓의 가격이 달랐다. 다만, 한 국가 내에서만 이동을 해왔던 경험 때문에 그것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마저도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낯설게만 느껴질 수밖에..
부다페스트 역(Keleti St.)
빈에서 부다페스트까진 3시간이 좀 넘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3시간을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손사래를 쳤을 텐데, 이미 4시간 넘는 시간을 기차로 이동해보니 3시간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격을 체크해보면, 빈에서 부다페스트까지는 25유로(약 31,000원), 부다페스트에서 빈까지는 10,230포린트(33유로, 약 40,000원)였다. 사실 부다페스트로 떠났던 건 말 그대로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강풍과 비가 흩날리는 빈의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워서 정상적인 여행이 불가능했다. 하루는 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Wien Museum of Art History)에서 어찌어찌 버텼지만, 그 다음부턴 일정을 짤 수 없는 지경이었다. 빈의 일정은 물론 원래 예정돼 있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행도 과감히 접었다. 고작 1시간 거리를 이동해 봐야 날씨의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아예 멀리 가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차피 기차에선 비를 맞을 일도 없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도를 살펴보다 (빈으로부터 적당히 멀리 있는) 부다페스트를 골랐던 것이다.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한번 해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표를 구입하는 것도, 교통 수단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다. 이제야 뭔가 진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금, 여행자 같았다.
아, '국경'을 넘어 본 소감이 어땠냐고?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왜냐하면 대부분(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잠'에 빠져버려서 국경이라는 걸 볼 수도 없었고, 당연히 국경을 넘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없었다. 중간에 잠에서 살짝씩 깨긴 했지만,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하는 건 '잠결'에 무리(?)한 일이었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지만 인터넷 연결이 원활한 편은 아니라서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탓도 있다.)
다시 말해서 그곳에서는 '국경'이 큰 의미가 없었다. 그곳은 검문소를 두고 일일이 여권과 비자를 확인하는 살벌한 지역이 아니었다.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서지도 않았다. 누구도 국경이라는 (애초에) 비실체적 개념을 인식하지 않았고, 그 보이지 않는 '선'을 설명하지도 이해시키지도 않았다. 특별한 기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쉬운 일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이토록 쉽게(잠이 들어 있었을 테니까)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당연히 '넘는다[越]'는 표현을 쓸 여지조차 없었다. 그저 끊임없이 연결된 땅덩어리, 그 연속면의 계속일 따름이었다. 이쯤에서 불순하게도 한 가지 생각이 더 떠오른다. 앞서 헌법 제3조를 살펴보면서 '영토'의 개념을 짚어봤는데, 바로 그 다음인 제4조의 내용은 이러하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 머니투데이, 이승현 디자이너
통일을 지향하되,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지난 보수 정권 하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남북한이 극단적 갈등 국면에 빠지면서 발생한 현실적 피해와 통일이 미뤄지면서 생긴 잠재적 피해는 산술이 불가능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었다. 다음 정부는 부디 헌법 제4조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대통령이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한 지향을 가진 후보들이 더욱 약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 모르지 않겠는가. 우리도 국경을, 그 경계를 인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시절이 오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과거 경성에서 평양으로, 또 신의주로 그리하여 저 드넓은 시베리아로 나아갔던 선조들의 '무용담'이 현실 속의 일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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