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동유럽 여행기] 9. 드레스덴에서 만난 오토 딕스

너의길을가라 2017. 5. 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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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를 통해 묘사된 '곳'이나 '것'을 '상상' 속에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만나 '실체적'으로 '경험'하는 것. 여행이 주는 매력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와 같은 상상과 기대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가령, 소설 속에 등장했던 장소, 예를 들면 도시나 마을, 더 세밀하게는 특정한 거리 속에 '나'를 두는 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굳이 활자가 아니더라도 좋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혹은 누군가의 여행 사진 속에서 본 '장면'들에 나를 대입하는 일은 어떠한가. 쇼핑의 도시 홍콩의 '하버시티'를 둘러본다거나,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청와대의 거울의 방이 아니다)에서 그 호화로움을 만끽하고, 프라하 성에서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시내를 바라보며 커피(스타벅스가 있다)를 한잔 마시는 건 어떠한가. 


츠빙거 궁전


슈탈호프의 벽화 '군주의 행렬'


아무리 정교한 묘사라 할지라도, 그러니까 '영상'과 '사진'이라 할지라도 '실제'에는 미치지 못한다. TV 속 먹방에서는 그리 맛있게 '연출'됐던 음식들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맛을 선사하지 못하는 경험이 허다하지 않던가. 그 경험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대상을 '내'가 실제로 느낀다는 게 중요하다. 그 자체로 소중하다. 또, 그래야만 진짜 '내 것'이라 할 만 하다. 


우리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그림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앎'은 제한적이다. 77cm x 55cm라는 설명을 보고서 그 크기를 짐작해 보지만, 직접 루브르 박물관 안에 들어가서 그 압도적인 크기에 짓눌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 속을 헤매다가 모나리자」를 마주한 순간의 경험이야말로 진짜 '앎'이라 할 만 하지 않겠는가.


알베르티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림'으로 넘어왔는데, 드레스덴의 알베르티눔(Albertinum)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서론이 길어졌다. '유명세'로 따지자면 레지던츠 궁(Residenzschloss), 츠빙거 궁전(Dresdner Zwinger)에 한참 못 미치겠지만, 드레스덴의 '대표' 박물관(미술관)이라 할 수 있는 알베르티눔에 다녀와야 드레스덴을 보고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츠빙거 궁전에도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 베르메르의 「편지 읽는 소녀」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지만, 알베르티눔이 소장하고 있는 카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의 「산 위의 십자가」 쪽에 좀더 무게가 실렸다. 무엇보다 알베르티눔을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오토 딕스(Otto Dix)'라는 화가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웬만한 여행 책자에는 그런 정보가 수록돼 있지 않다.)


댄서 아니터 베르버 사진, 오토 딕스 「댄서 아니타 베르버 초상」


"'미의식'이란 '예쁜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다.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자신의 '미의식'을 재검토한다는 것은 자신이 무언가를 '예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 건지 되물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미의식이 실은 역사적 · 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 서경식, 『고뇌의 원근법』-


오토 딕스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이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서경식은 그 책에서 "왜 내가 본 모든 한국 근대미술 작품은 그렇게도 예쁘게 마감되어 있는 것일까"라며 '미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미의식이란 마냥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미(美)라고 하고 무엇을 추(醜)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근대미술 작품들은 기존의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답습할 뿐, 그것이 왜 예쁘고 아름다운지 혹은 그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그대로 느껴도 괜찮은지에 대한 '고뇌'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한데, 그렇지 못한 한국 근대미술에 대해 서경식은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양한 작가들을 거론하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오토 딕스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했던 오토 딕스는 전쟁의 참혹함을 몸소 체험했다. 1915년 9월부터 1918년 12월까지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수년 동안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는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집들 사이로 난 길을 포복을 하여 벗어나려 애쓰지만 결국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꿈이었다"고 회고했는데, 그 경험을 녹여 낸 그림이 바로 「전쟁 제단화」(1929~1932)이다.


오토 딕스는 그의 전장 일기에 "이, 쥐, 철조망, 벼룩, 유탄, 폭탄, 구멍, 사체, 피, 포화, 술, 고양이, 독가스, 캐넌포, 똥, 포탄, 박격포, 사격, 칼, 이것이 전쟁! 모두 악마의 짓거리!"라고 적어 두었는데, 그만큼 그에게 전쟁과 그로 인한 죽음은 중요한 모티프(motif)이자 소재였다. 그래서 오토 딕스의 그림에는 전쟁이 휩쓸고 간 사회의 공포와 혼란, 절망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일견 '추'하다. 




군인이 수녀를 강간하려는 순간을 담기도 하고(「군인과 수녀」), 늙고 지친 모습의 창녀들을 그림으로써(「세 여자」, 「거울 앞에서」, 「뚜쟁이」) 독일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 성냥팔이를 하며 생계를 겨우 이어가는 상이군인의 모습은 전쟁 이후 군인들이 겪고 있는 박탈감을 표현한다. 이러한 그림들 때문에 오토 딕스는 나치 정권에서 탄압을 당한다. 그림이 압수되기도 하고,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토 딕스의 그림은 마주 하기 힘들다. 그의 작품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미의식'을 계속해서 건드리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이름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그의 그림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하지 않았다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드레스덴에 갔다면, 그 도시의 아픔을 느끼기에, 그래서 그 곳을 경험하기에 '오토 딕스'만한 매개가 또 있을까. 


동독 정부는 종전 후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초토화된 드레스덴을 대대적으로 복원했다. 그래서 지금의 드레스덴은 1945년 이후의 드레스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재건된 드레스덴의 역사적 건물들도 찬란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해 있기엔 뭔가 찜찜하다. 드레스덴에 갔다면, 알베르티눔을 찾아야 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 곳에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 오토 딕스가 있기에. 


카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 산 위의 십자가 (The Cross in the Mountains, Oil on canvas, 1808)


폴 고갱(Paul Gauguin), 「parau Api」, 1892


카스퍼 데이비드 프리드리히, 「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1819~1820


빈센트 반 고흐, 「Still life with Quinces」, 1888~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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