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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상 검증 구역'으로 초대합니다.

너의길을가라 2024. 1. 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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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민감한 언어들이 과감하게 펼쳐졌다. 누군가는 '헉!' 하고 놀랐을지 모른다. 이렇게 과격하다고? 반면, 누군가는 짜릿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분명한 건, 단순히 자극을 좇는 게 아니라 건강한 토론을 지향한다는 점, 그리하여 성숙한 사회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6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이야기다.

정치(좌파/우파), 젠더(페미니즘/이퀄리즘), 계급(서민/부유), 개방성(개방적/전통적).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4개의 영역에 각자의 이념을 표한 12명의 참가자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이념 서바이벌 예능이다. 일반적인 서바이벌 예능이 다양한 게임을 통해 우승자를 결정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사회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참가자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테드(유튜버 이승국, 이념 성향 : 우파, 페미, 부유, 개방), 마이클(래퍼 윤비,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부유, 전통), 하마(작가 하미나, 이념 성향 : 좌파, 페미, 서민, 개방), 슈가(아나운서 김나정,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부유, 개방), 다크나이트(특수부대 출신 이창준,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서민, 전통), 벤자민( 변호사 임현서,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서민, 개방)

슈퍼맨(국민의힘 정치인 김재섭,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부유, 전통), 백곰(더불어민주당 정치인 박성민, 이념 성향 : 좌파, 페미, 서민, 개방), 지니(회사원 이지나, 이념 성향 : 우파, 페미, 부유, 전통), 낭자(경호원 출신 배우 이수련, 이념 성향 : 우파, 이퀄, 서민, 전통), 그레이(빅데이터 전문가 전민기, 이념 성향 : 좌파, 페미, 부유, 개방), 고애신(아이스하키 감독 안근영, 이념 성향 : 좌파, 페미, 부유,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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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코드를 부여받은 참가자들은 9일 동안 합숙을 하며 공동체를 형성한다. 매일마다 리더를 뽑는데, 연임도 가능하다. 선출된 리더는 공금 축적 및 사용, 노동 할당 등 공동체 내의 다양한 사안을 결정한다. 리더의 권한은 막강해서 '세율'을 정하고, 일정 금액을 개인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의사결정 방식을 유도해 공동체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의 신념 코드를 철저히 숨기면서(사상 점수를 틀키면 퇴소당할 수 있다) 한편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공동체 상금을 적립해야 한다. 최대 상금은 2억이며, 다수의 생존도 가능하다. 한 가지 변수는 공동체의 와해를 꾀하는 '불순분자'가 1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다.

'대한민국은 남자가 역차별 받는 사회이다.'
'동성애는 후천적 오류이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찬성 2명, 반대 10명)


첫날의 주제는 '젠더'였던 모양이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사전 인터뷰의 수위 센 발언들이 차례차례 공개됐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급격히 식었다. 야간에는 참가자들이 온라인 익명 채팅을 통해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찬반 각각 3명씩 참여가 가능하며, 찬/반 투표에 따라 상금을 받는다. MVP에게는 추가 상금이 주어진다. 동률 시에는 MVP가 있는 쪽이 승리한다.

토론의 주제는 '데이트 비용을 더 내는 남자가 섹시한 것은 자연스럽다'였다. 토론은 난장판으로 진행됐다. 반대쪽 주자로 나선 '불순분자'인 벤자민은 변호사답게 유추해석금지, 확대해석 금지를 내세우며 모든 논의를 논점 이탈로 못박았다. 생산적 토론을 기대했던 참가자들은 도돌이표로 귀결되는 상황에 허탈감을 드러냈다. 찬성쪽 주자였던 지니(첫째 날 리더)는 "빡대가리인가?!"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기존의 서바이벌 예능과 차별점에 두드러진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낯선 지점도 두드러졌지만, 여러 포인트에서 눈길을 끌었다. 우선, 다양한 이념을 지닌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공동체를 형성하게 한 설정은 국가의 축소 모형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어떤 리더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격이 달라질 텐데, 그 변화 및 갈등 양상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또, 참가자에게 닉네임을 사용하게 하며 '사회적 가면'을 쓸 수 있도록 하되, 온라인 토론에서는 익명성을 보장하여 자유롭게 이념 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건 익명 토론에서 격렬하게 의견을 피력했던 참가자가 익명을 벗어나는 순간 '중립'의 낯빛을 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이중성을 포착하고 있다.

간과하기 쉬운데, 한 명의 사람은 다양한 이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이를 4가지 영역으로 구성했다. 풀어 설명하면, 정치적 성향이 같다고 해도 젠더 영역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일치하더라도 개방성에 견해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하나의 주제에서 대립해도 다른 사안에서 의견이 일치해 공조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야심찬 기획을 현실화한 제작진이 내심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이런 것이리라. 양극단으로 극심하게 갈라진 한국 사회의 단면을 구현하여, 그 속에서 구성원들이 어떤 식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말이다.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토론을 통해 충분히 소통하고, 상황에 따라 의견의 합치를 이루어 공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조응할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12명의 참가자들에 만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념적 차이를 지닌 그들은 어떻게 갈등을 봉합/타협/조율할까. 다른 이념을 가진 상대에 대한 설득은 가능할까. 권력 앞에 신념이 유지될 수 있을까. 답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생물처럼 매순간 변화할 공동체에 초대한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대해 가감없는 논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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