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눈앞에 펼쳐진 설경, 시라카와고 료칸 '온야도 유이노쇼'에서 즐긴 특별한 식사

너의길을가라 2025. 1. 2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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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고(白川郷) 갓쇼즈쿠리 마을의 어딘가에 서서 멍하니 눈을 바라봤다. '내린다'가 아니라 '쏟아진다'라는 말이 필요했다. 만약 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그토록 많은 눈이 내렸다면 전전긍긍했을 테지만, 이 곳은 시라카와고였다. 장화를 구입하고 완전무장을 마친 상태에서 맞이하는 눈은 너무도 낭만적이었다. 이대로 계속 바라봐도 좋을 듯했다. 눈사람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마을을 구석구석 신나게 누빈 후, 시라타와고 버스 터미널로 복귀했다. 뭐랄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할까. 넓지 않은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들 중 절반은 '눈에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됐다. 이대로 젖은 몸을 버스에 태우고 몇 시간씩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다행히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이동할 참이었다.

온야도 유이노쇼의 셔틀 차량을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길

전통적인 일본식 온천 숙소인 '온야도 유이노쇼'에서는 15:05부터 30분 간격으로 4회 셔틀 차량을 운영한다. 인원이 많아서 한 번에 이동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곧바로 다시 운행하는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본래 '온야도'는 고급 료칸을 의미했는데, 요즘에는 온천과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전통적인 온천 숙소를 통칭한다. 물론 1박에 (식사 포함) 50만 원 이상이니 고급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어떤 글에서는 버스 터미널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셔틀 차량 기사님이 플래카드를 들고 들어와서 손님을 찾는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폭설이라는 기후 상황이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 신호는 없었다. 따라서 셔틀 시간이 되면 미리 밖으로 나가서 승합차를 찾는 걸 권한다. 위치는 버스들이 도착하는 쪽 인근이다.

일본에 여러 차례 여행을 갔어도 온천은 즐겨본 적이 없고, 호텔만 이용했을 뿐 료칸에서 머문 적도 없어서 '온야도 유이노쇼'에 대한 기대가 컸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할까. 실제로 하루 묶어보니 특유의 정중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대형 료칸이라서 쾌적할 뿐더러 일본 전통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가방을 그대로 두시면 바퀴를 닦아서 앞쪽에 옮겨드릴게요. 손님께서는 신발장에 신발을 보관하신 후 번호를 부르면 체크인하시면 됩니다."

제법 긴 일본어에 고장난 기계마냥 머뭇거리자, 눈치빠른 직원이 "한국분이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다행히 부산에서 온 한국인이었다. 그 분에게 짐을 맡긴 후 체크인을 위해 이동했다. 몇 가지 체크가 끝나면 식사 시간이 정해진다. 먼저 온 손님들이 앞 시간을 선점한 터라 저녁 8시 이후로 배정받았다. 낙심하던 차에 운 좋게도 한 서양인이 일정 변경을 요청해 5시 45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체크인이 마무리되고 유카타를 비치된 공간으로 이동했다. '온야도 유이노쇼'에서는 투숙객에게 일본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유카타를 제공하는데, 취향에 맞는 옷을 골라 환복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신기함에 유카타를 입고 료칸 탐색에 나섰지만, 기념 사진을 몇 장 찍은 후에 방에 비치된 편안한 옷으로 재빨리 갈아 입었다. 유카타를 입는 체험을 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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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야도 유이노쇼'에서는 일본의 전통적인 고급 코스 요리를 뜻하는 '가이세키(懐石)'를 경험할 수 있다. 원래 다도에서 제공되는 식사였는데, 점점 의미가 변화해서 지금은 고급 코스 요리가 됐다. '가이세키'는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서 계절감을 표현하며, 맛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추구한다. 일본의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고 하는데, 그 의미를 알 듯했다.

단순히 한 끼 식사로 배를 채우도록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이세키'를 제공함으로써 일본의 문화와 철학을 전하고 싶은 의지가 읽혔다. 숙소를 예약할 때 식사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가격대가 조금 있지만 동네 식당들이 오후 3~4시에 문을 닫는 편이라 숙소에서 편히 식사를 하는 걸 권한다. 무엇보다 '예술 작품'에 가까운 '가이세키'를 경험할 좋은 기회이다.

"평소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오늘은 예외예요."
"특별한 날이군요?"
"(웃음) 맞아요. 특별한 눈입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식당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커다란 통창으로 눈이 내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무조건 창가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좌석 변경을 요청했다. 창가 쪽에 앉는 순간, 입 안에서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경이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 아름다운 설경을 마주하며 식사를 한다는 상황이 처음에는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다양한 코스 요리가 하나같이 정성스러웠고 고급스러웠다. 상냥한 직원은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며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분명 요리의 맛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보다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분명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상당히 낯설었고, 어쩌면 기묘하기까지 했다. 코스 요리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고개만 들면 펼쳐지는 초현실적인 설경 덕분이었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식사를 떠올려보자. 대부분 고개를 들면 애석하게도 TV가 보인다. 아니면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전화로 영상을 시청하는 식이다. 식당에서 혼밥이라도 하게 되면 꽉 막힌 벽을 상대해야 한다.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건 생각보다 드물고, 창밖의 풍경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음식 한 점에 풍경 한 순간, 거기에 나란히 앉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대화까지 그야말로 호사를 누렸다고 할까. '온야도 유이노쇼'에서의 '가이세키'는 마치 자연 한 가운데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창 밖에 눈은 끊이지 않았고, 가이세키의 코스도 끝없이 이어졌다. 정서적으로 충족되는 시간이었다. 인생에 있어 손에 꼽을 순간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식사를 마친 후 조금 소화를 시켰다면 온천을 즐길 차례다. '온야도 유이노쇼'에는 깔끔한 시설을 갖춘 대중탕도 있지만, 프라이빗 탕('천운탕', '성운탕')이 있어서 만족도가 높다. 프라이빗 온천은 이용 시간이 45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웨이팅이 있어서 눈치 싸움도 필요하지만, 커플끼리 여유롭고 로맨틱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히 추천한다.

그렇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보면 22:00~23:00까지만 운영하는 야식 시간이 돌아온다. '온야도 유이노쇼'의 특별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소바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줄이 제법 길게 설 정도로 인기다. 가이세키로 배를 채웠지만, 그 순간만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었다. 큰 기대 없이 먹었는데, 웬걸! 최고의 별미였다.

현지 직원의 말처럼, 그날의 눈은 정말 특별했다. 창을 열었다가 식겁했다. 창문의 절반까지 눈이 쌓여 시야가 막힌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야?' 아내와 눈을 마추지며 황당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아침부터 먹자." 식당의 창 밖으로 펼쳐진 아침의 풍경, 설국이 된 시라카와고의 모습은 그저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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