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점과 선』, 선입견이 만들어 낸 맹점을 꼬집다

너의길을가라 2013. 12. 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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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추리소설의 대세(大勢)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물론 간간히 '트릭(가령 밀실 트릭)'에 기초한 추리 소설들도 나오고 있고,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시리즈처럼 '서술 트릭'을 기반으로 한 추리소설들도 일정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역시 주류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유베 미유키, 미나토 가나에 등이 주축이 된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추리 소설은 얼마나 교묘한 '트릭'을 개발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 간에 한바탕 머리싸움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회파 추리 소설'은 '범죄의 동기'를 중시한다.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케이스도 있고, 혹은 범인의 시선에서 소설을 전개하기도 한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이 '불량한'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런 면에서 사회파 추리 소설은 뒷맛이 꿉꿉하다. 



『점과 선』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그 외에도 많은데, 우리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일본 문학의 거인', '일본의 진정한 국민 작가' 등이 있다. '내용은 시대의 반영이나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를 이루어 간다'는 신념을 갖고, 작고(作故)한 82세까지 무려 천여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런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 소설이 바로 『점과 선』이다. 『점과 선』은 사회파 추리 소설의 교본이라고 할 만큼, '사회성'도 갖춘 데다 '트릭'마저도 멋드러진다.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4분간의 트릭'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능력이 출중한 명탐점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형사들에 의해 '트릭'이 밝혀진다는 점이다. 뛰어난 추리 능력의 소유자가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특유의 성실함과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끝까지 물고늘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쾌감을 준다고 할까? 물론 최근에는 이런 구성이 굉장히 흔해졌지만, 이 소설이 나온 시점이 1958년(연재는 1957년 2워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획기적인 발상이다. 


또, 최근의 사회파 추리 소설들이 '사회'를 조망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사용하면서 소설의 전개가 다소 느려진 반면,『점과 선』의 경우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신속하게 전개된다. 속도감 있는 독서를 원하시는 분들에겐 안성맞춤인 셈이다. 


『점과 선』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소설 속의 한 대목인,


"누구나 모르는 사이에 선입관이 작용해서, 당연하다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무섭습니다. 이 만성이 된 상식이 간혹 맹점을 만드는 일이 있습니다." 


에 모두 담겨있다. 


선입견이 만들어 내는 맹점. 해안가에서 남녀가 청산가리를 먹고 함께 죽은 채 발견됐다면, 열이면 열 '동반자살'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점과 선』은 바로 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맹점'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점과 선』을 통해,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아니 지나치게 익숙해서 당연하다는 인식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당연한 것'들이 참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안정감'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알게 모르게 '맹점'에 갇혀 살게 된다. 물론 나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조차 까마득히 모른 채 가려진 시야만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으악, 정말 꿉꿉해져 버렸다. 이것이 사회파 추리소설의 '마력'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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