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버락킴의 극장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의 고군분투가 의미하는 것은?



간혹 '재밌는' 혹은 '잘 만든'과 같은 수식어가 아니라 그저 '좋은 영화'라고 부르고픈 영화가 있다.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 말이다. 총 제작비 2억 원이 들어 간 이 저예산 영화는 개봉 6일 차(18일)에 2만 관객을 돌파하며,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다양성 영화로는 매우 의미있는 흥행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3일 현재까지 33,355명이 이 좋은 영화를 감상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매순간 꿈을 안은 채 성실하게 삶을 살아온 '수남(이정현)'이 겪는 좌절과 그로 인해 괴물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처절한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과 풍자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현실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 속에서 괴물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비단 수남만이 아니지 않은가?




"수남이 굉장히 불쌍했어요. 속으로 좀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이 계속 수남을 가두고 괴롭히고 짓누르는데 본인은 계속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복수를 하죠. 수남의 세계에서만 해피엔딩인 것 같아요. 밝고 순수한 애니까요. 남편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고 전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면서 더 밝아지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저도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연기하려 노력했어요.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도 너무 불쌍했죠." (이정현)


터 '남'다. 로 주판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고,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숫자가 무려 14개에 이를 정도로, 한마디로 수남은 엘리트를 꿈꾸던 소녀였다. 하지만 세상은 급격히 변해갔다. 컴퓨터의 등장은 그녀의 설자리를 앗아갔다. 결국 수남은 컴퓨터가 아니라 계산기를 사용하는 작은 공장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청각 장애가 있는 남편과 결혼하게 된다.





수남은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채 절망하고 있는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꿈이었던 '내 집 마련'에 전력을 쏟기 시작한다. 신문배달부터 청소, 식당 주방 등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착실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과연 수남의 고군분투는 꿈을 이루는 것으로 보답받게 됐을까? 대답은 뻔하다. '꿈도 꾸지 마라!'


전기요금, 수돗세 등 온갖 고지서는 쌓여만 가고, 물가(物價)는 지치지도 않고 치솟는다. 수남 앞에 놓인 건 '꿈'이 아니라 '빚'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살을 선택한 남편은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럼에도 수남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냉담한 현실 속에서도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내가 좀더 열심히 하면 된다', '수술비만 대면 남편이 깨어날 것이다'



열심히 살면 그만큼의 보답이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세상, 그곳이 바로 (역설적 의미의) '성실한 나라'이자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가 아닐까? 그리고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앨리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해간다. 더 이상 착하게 살아서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남은 잔혹 동화의 주인공이 된다.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수남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예요. 그 무지함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사회 시스템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변하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거겠죠." (안국진 감독)



다. '템'서 '인'다. 럼 <스>다. '꿈을 가져', '노력하면 돼',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악마의 유혹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철저히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꿈'이 먼저가 아니라 '꿈을 가져도 좋을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노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그만큼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더 열심히 하면, 다시 말해 쏟아붇는 노력만큼 얻을 수 있는 공정한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