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스타목사 전병욱의 숨바꼭질, 교단의 침묵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너의길을가라 2015. 5. 6. 22:32
반응형


종교와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걸핏하면 '다음(DAUM) 클린센터'로부터 '권리침해신고(명예훼손)로 글이 임시삭제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니 말이다. 자랑할 만한 명문(名文)은 아닐지라도 애써 쓴 글이 사람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진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이 글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써야 할 글을 쓰지 못하는 고통보다는 나을 것이기에 이렇듯 '바보짓'을 하고야 만다.


헤럴드경제



여성 교인을 수 년동안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전 삼일교회 목사)와 관련된 일련의 가사들을 훑어보면 '기가 찬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임원회는 지난 4월 23일 "뚜렷한 범죄가 없다(성추행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상소장을 삼일교회로 돌려보냈다. 한편, 지난 5일 전 목사가 재직하고 있는 홍대새교회 측은 삼일교회 장로와 교인 등을 전 목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그리고 전 목사는 '피해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한국일보


<한국일보>가 정리한 '전병욱 목사 성추행 의혹 사건 일지'를 살펴보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지난(持難)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긴 했지만, 이를 누르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되돌이표와 같은 공방이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단 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전 목사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목회실 안에서 여성 교인에게 구강 성교를 강요하고, 예배시간에 찬양대원의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상습적으로 행해왔다. 또, 여성 교인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마사지 해달라고 하고, 주례를 부탁한 예비신부를 성추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피해자들의 증언은 『숨바꼭질-스타목사 전병욱의 불편한 진실 』이라는 책으로 엮여 출간됐다. 



성추행 의혹이 세간에 퍼지자 2010년 12월 전 목사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다"면서 사임을 하고 물러났다. 이는 매뉴얼처럼 당연한 일이고, 잘못을 저지른 자가 마땅히 따라야 할 절차다. 물론 그보다 선행되어야 했을 절차가 있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다'는 코멘트보다 앞서야 했던 건, 바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로부터 1년 5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2012년 5월)에 전 목사는 버젓이 홍대새교회를 개척하며 목회 황동을 재개한다. 애초에 삼일교회 당회가 내린 징계가 '3개월 설교정지, 6개월 수찬정지'에 불과했고, 교단의 목사들을 철저히 관리해야 할 노회와 총회마저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제 식구 감싸기' 식에 머문 탓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의 식구 만들기'로 전 목사에 대한 징계를 머뭇거리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난 4월 2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임원회가 삼일교회가 전 목사에 대한 면직 혹은 징계를 요구한 상소장을 처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명분은 하급심에 해당하는 노회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을 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뚜렷한 범죄 사실 없이 자기 집안 사람이 아닌 사람을 고소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


자기 집안이 아닌 사람? 지난 4월 노회가 양분(兩分)되면서 삼일교회는 평양제일노회 소속이 됐고, 전 목사는 평양노회 소속이 되면서 '다른 집안 사람'이 됐기 때문에 처벌이 곤란하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공교로운 '양분'이란 말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교인들이 '목사 개인 사생활보다 그 분의 말씀이 좋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총회 임원회 관계자로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CBS '크리스천NOW' 방송 캡처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교단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사고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로 '윗대가리'가 가득 채워진 교단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자정 능력을 발휘할 것을 기대하기란 터무니 없는 일이다. "목사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성장만 하고,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면 끌어안고 가겠다는 생각이 아니겠냐. 자정능력을 상실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한 개신교 목사의 비판이 공허히 흩어진다.


종교의 타락은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는 '기업화'되어 간다. 무한경쟁 체제에서 교단은 '스타목사'에 의존하게 되고, 그들이 끌어다주는 이익과 부패를 교환한다. 눈을 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묵인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권위를 악용해 성추행 등의 행위를 일삼은 목사를 단호히 징계하기는커녕 '관할'을 따지며 요리조리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교단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그들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실을 다지기보다 몸집 불리기에 급급하고, 목사 자격증을 남발해 성직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부패(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지독)한 목사들이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설교'를 전하고, '축도'를 하는 역겨운 상황이 바뀌려면 이를 방조하는 교단이 깨어나야만 한다. 물론 눈을 떠야 하는 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능력을 상실한 일반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