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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버닝썬 게이트'의 실체, BBC 다큐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너의길을가라 2024. 5. 2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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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의 출발점은 2019년 1월 MBC가 단독 보도했던 폭행 사건이다. 2018년 11월 버닝썬 게이트의 최초 제보자가 버닝썬 직원에게 폭행을 당한 후,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업무방해죄로 체포됐다. 당시 제보자는 업소와 경찰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버닝썬과 관련된 여러 의혹(마약, 성범죄, 조세 회피 등)이 보도되며 음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폭행 사건이 '트리거(Trigger)'가 된 건 맞지만, 그 이전에 버닝썬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다.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가수 승리, 정준영, 최종훈을 주의깊게 지켜보던 이들 말이다. BBC 탐사보도팀 'BBC Eye'은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에서 K팝 스타들의 성추문을 취재했던 '스포츠서울' 박효실, 'SBS' 강경윤 기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튜브에 공개된 해당 다큐는 3일 만에 조회수 475만을 돌파할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다. 

5년 만에 '버닝썬 게이트'를 다시 짚어보는 BBC의 다큐멘터리는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사건으로 시작된다. 2016년 9월 정준영은 당시 교제하던 여성 A씨와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했다가 피소됐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했던 박효실 기자는 피해자 측 변호사가 A씨와 접촉해 "무고죄로 큰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결국 A씨는 정준영에게 잘못이 없다며 고소를 취하했다. (BBC 다큐멘터리는 KBS 측 변호사가 피해자를 만났다는 뉘앙스로 편집됐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대중은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준영을 연민했다. 경찰은 범죄 혐의가 없다며 사건을 종결했다. '정준영은 억울한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구축됐고, '1박 2일'에서 하차했던 정준영은 2017년 1월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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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을 보도했던 박효실 기자는 온갖 악성 댓글에 시달렸고, 정준영의 일부 팬들로부터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협박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박 기자는 충격이 워낙 커서 유산을 했던 아픔을 토로했다. 그는 "제 뒤에 많은 여기자들이 또 동일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시간을 버텨내자."는 각오로 지옥 같던 시기를 견뎌냈다고 회상했다.

정준영은 자신의 범죄를 덮을 수 있다고 믿었을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던 정준영 논란은 2019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2016년 '불법촬영'으로 고소됐던 정준영은 당시 사설업체에 유일한 증거인 휴대전화 포렌식을 맡겼는데, 3년 후 해당 휴대전화의 대화 내용이 유출된 것이다. (당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의로 부실하게 처리했다.)

"2016년 언론에 보도된 피해 여성의 영상은 없었지만, 정준영이 다른 여성들과 찍은 수많은 영상을 비롯해 익숙한 다른 얼굴들도 포착됐어요."


정준영이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제보받은 SBS 연예뉴스 강경윤 기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거기에는 대중에게 추앙받는 K팝스타의 추악하고 끔찍한 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채팅방의 영상 중에는 정준영이 여성을 성추행하는 장면, 승리가 여성을 윽박지르며 강제로 끌고 가려는 장면도 있었다.

또, "살아있는 여잘 보내줘."라는 대화 내용도 있었는데, 이는 의식을 잃은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불법촬영된 성관계 영상도 확인됐다. 이들은 여성을 장난감 취급하고, 전리품으로 여기며 낄낄댔다. 그뿐만이 아니다. "잘 주는 여자(를 준비해달라)"라는 승리의 카톡 내용은 성매매를 알선하는 정황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버닝썬은 그런 곳이었다.

 BBC 탐사보도팀 'BBC Eye'은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된 새로운 사실도 공개했다. 가령, 걸그룹 카라(KARA)의 멤버였던 故 구하라가 '버닝썬 게이트' 취재에 난점이었던 경찰 유착 관계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구하라는 정준영 단톡방에 등장하는 '경찰총장'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윤유근 총경)이라는 사실을 최종훈의 입을 통해 확인해주었다.

강 기자는 구하라가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며 "굉장히 용기 있는 여성"으로 기억했다. 또, 구하라가 "저도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잖아요."라고 언급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다. 그밖에도 다큐멘터리에는 2019년 버닝썬에서 마약 성분이 든 술을 마신 후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의 인터뷰도 담겨 있다.

한국 사회를 들썩였던 '버닝썬 게이트'의 표면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승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지난해 2월 9일 만기 출소했다. 최종훈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21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정준영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후 항소 끝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지난 3월 출소했다. 유착 의혹이 불거졌던 윤 총경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범죄의 온상이었던 버닝썬은 문을 닫았다. 승리, 최종훈, 정준영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 모든 게 끝난 걸까. BBC는 '버닝썬 게이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다. 당시 버닝썬에서 일했고, 지금은 강남의 다른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한 직원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소위 '물뽕'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다고 말이다.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 안 기자의 말처럼, 그의 기사는 분명한 '파장'을 일으켰다. 비록 아주 큰 호수의 미미한 파동이었을지라도, 얼마 못 가서 잠잠해졌을지라도 우리는 그 파장을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버닝썬' 들이 존재하고, '승리•최종훈•정준영' 들이 활개치지만, 적어도 우리의 문제의식은 '버닝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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