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2016년 새해 그 출발점에서 '기억할 의무'를 이야기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1. 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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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시작됐다.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해를 세면 '병신년(丙申年)'이 되는데, 병신(病身)이라는 욕과 동음(同音)인 탓에 이를 활용(?)한 장난이 주거니 받거니 한다. '잊을 망(忘)'을 쓴 '망년(忘年)'이든 '보낼 송(送)'을 쓴 '송년(送年)'이든 간에 우리는 한 해를 보냈다(고 여긴다). 잊는 것이나 보낸다는 말에는 '단절(斷絶)'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다. 거기엔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될 것 같은 긍정적인 기대감도 묻어있다.


지금은 하하의 아내로 더 알려진 별(김고은)의 '12월 32일(연말이 되면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오는 노래일 것이다)'은 이별의 아픔을 표현한 노랫가사지만, 사고의 분절성(分節性)을 과감히 타파한 참신함이 돋보였다. 사실 2015년 12월 31일이나 2016년 1월 1일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겠는가. 그저 '하루'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 잊고 싶은 마음,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 말이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 '잊힐 권리'가 어법에 맞는 표현)'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권리'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이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자신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데, 굳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만 한정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겐 잊힐 권리가 있다. 굳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44조2(정보의 삭제요청 등)'라는 법 조항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잊힐 권리'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사소한 부끄러움이 이유가 됐든, 끔찍한 기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든, 혹은 지구 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은 존재론적 고민 때문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를 지울 권리가 있다.  




평소의 필자의 글을 읽어봤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미안)이라면 눈치를 챘을 것이다. '잊힐 권리'는 밑밥이고, 정작 말하고 싶은 건 (그 대척점에 있는) '기억할 의무'라는 것 말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무는 없다. '국민의 4대 의무'에 포함되지도 않고,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법 조항도 없다. 그래서 이 의무는 강제성이 없다. 법적인 기속력도 구속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 취하고 있는 방식처럼 호소(呼訴)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정부 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의 후폭풍이 거세다. 이미 지난 글(위안부 협상 타결, 피해자가 사라진 화해와 용서가 가능한가?)에서 피해자 없는 화해와 용서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 합의의 핵심은 '이제 그만 잊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발목을 잡는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자. 물론 제대로 털어버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동의하는 합의,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동의였다면 말이다.


 


분명 내용적으로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번 합의는 '10억 엔에 소녀상을 판'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일본은 이번 협상을 '최종적', '불가역적'이라 발표했고, 아베 총리는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도 말해 뒀다. 어제로써 모두 끝이다. 더 사죄도 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양국의 정부가 '피해자를 대신해서' 잊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끔찍했던 개인적 기억, 그 추악했던 역사 속 반인륜적 범죄행위들을 몽땅 말이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당신들도 다 잊어라." 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가. 누가 감히 피해자에게 그런 '잊음'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의) '국가'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오히려 단 한 명의 피해자가 남을 때까지, 그 아픔을 오롯이 기억해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 아닐까? 



"안 지친다면 말이 안 된다. 해 떠올 때 아내와 함께 팽목항 방파제에 있는 등대에 가서 한 번 울고 왔다. 작년 여름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내년 이맘때에도 내가 이러고 있을까였다. 630일이 되는 지금 내가 걱정하는 것도 2, 3년 후에 내가 여전히 이러고 있을까이다." (단원고 2학년 8반 고(故) 최성호 학생의 아버지 최경덕)


<경향신문>의 '청년 미래인식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벌써 2년이 다 되어감에도)세월호 참사'였다고 한다. 굳이 '청년'으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당시의 충격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는 참담하리만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고,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사건이었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조용한 송년 문화제가 열렸다. (故) 이영만 군의 형 이영수는 "그날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과 교훈은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성인이 됐을 아이들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바다 속에 수장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남긴 흔적과 교훈을 얼마나 지켜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슬픔은 얼마나 대한민국을 바꾸었는가. 씁쓸하지만 그 어떤 대답도 차마 할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서린 눈물 앞에 우리는 얼마나 응답했던가. 역시 어떤 답도 내놓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섣불리 '잊음'을 이야기한다. 부끄럽지만, 이 순간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건 바로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건의 당사자'와 같은 크기의 아픔을 요구할 수는 없다. '피해자'와 같은 깊이의 슬픔을 요구할 순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기억'이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바꿀 수 없다. 출발점은 항상 거기에서 비롯된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좋다. 그런 집단주의적 표현들이 마뜩지 않다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예의라고 해두자. 



그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나갈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기억'할 때, 이 사회는 (비록 아주 느릴지라도) 조금씩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이는 것일지 모른다. 버리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정리해두는 것일지 모른다. 새해, 새로운 출발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기억'을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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