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반복되는 갑의 횡포, 몽고식품 회장님을 사퇴시킨다고 끝일까?

너의길을가라 2015. 12. 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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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식품 김만식 명예회장(77)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A씨가 김 회장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10월 22일에는 갑자기 낭심을 걷어차여 쓰러졌고, 마산연세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일주일 간 집에서 쉬어야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갑(甲)의 횡포'는 A씨가 처음 출근했던 9월 17일에서부터 권고 사직을 당한 12월 15일까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됐다. 


잊힐라 하면 또 반복이다. '갑(甲)의 횡포' 말이다. 게다가 따뜻한 소식들로 마음을 녹여야 할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런 분노스러운 소식을 접하게 돼 더욱 마음이 좋지 않다. 고작 짧은 뉴스를 통해 전해듣는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데,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당사자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가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던 경악스러운 폭언은 이러하다.



▶ 김만식 회장 : 너는 XX 뭐고? 그냥… 개XX야. 뭐야 XX 너는? 육군이야 해병이야 XX.

▷ A씨 : 육군입니다.

▶ 몽고식품 명예회장 : XX하고 있네.


▶ 김만식 회장 : 야, OO 이 자료 안 주더나 개XX야. 

 A씨 : 예 받았습니다.]


A씨는 이렇게 말한다. "행선지로 가는 길이 자신이 알던 길과 다르거나 주차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어김없이 욕설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절규는 인간의 실존(實存)을 건드린다. "회장은 나를 종부리듯 부렸고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는 2014년의 끝자락부터 2015년 새해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박창진 사무장의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외침과 닮아있다.


몽고식품 김만식 명예회장의 '종 부리기'는 A씨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입사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숱한 운전기사들이 (이런 대우를) 거의 다 겪었다고 들었다"는 A씨의 말처럼, 그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일은 빈번했다고 한다. 실제로 A씨 이전에 김 회장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B씨는 "손에 라이터가 있으면 라이터로 때리고 주먹이 있으면 주먹으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인터넷을 비롯한 SNS가 들끓기 시작하자 '몽고식품'은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익히 봐왔던 그런 패턴이다. 회사 관계자는 "회장이 직접 사과하겠다고 한다. 연락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A씨에게 보냈고(물론 즉각적인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몽고식품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사과문이 게재됐다. 


사과 드립니다. 최근 저희 회사 명예회장의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하여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피해 당사자 분에게는 반드시 명예회장이 직접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이와 함께 사태를 책임지고 명예회장직에서도 사퇴 하겠습니다. 그 동안 몽고식품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이 사죄 드립니다. 특히 피해 당사자 분에게도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몽고식품(주)는 앞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회사로서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김만식 회장의 만행(蠻行)으로 갑자기 '몽고식품'이라는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그와 관련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일부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불매'를 이야기했다. 1905년에 설립돼 무려 110년의 전통을 가진 장수 기업은 졸지에 휘청거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A씨의 폭로가 있는 지 하루만에 김만식 회장은 "저의 차량을 운행하시는 분의 심신에 큰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을 무거운 마음으로 반성하고 깊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명예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경험칙상 우리는 알고 있다. 저 사과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님을 말이다. 이건 말하자면 '수순(手順)'에 불과하다. 자신과 회사에 대한 면피용(免避用) 수순 말이다.


위와 같은 폭언과 폭행들이 '순간적'인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면 반성과 사과에 일말의 진실성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김만식 회장의 그것은 상습적이었을 뿐 아니라 매우 악질적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가 없다. A씨의 말처럼 김만식 회장에게 A씨는 인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종'이나 '노비(奴婢)'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안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먼저 김만식 회장의 인격적 결함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김 회장이 자신의 주변 사람 '모두'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 행위들은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행해졌을 텐데, 그 대상은 자신보다 '아랫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갑'과 '을'의 관계, 다시 말해 구조적인 문제다. 


문제는 '갑의 횡포'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구조화'되었다는 것이다. 사건이 폭로되고, 인터넷은 들끓고, 회사는 사과하고, 당사자가 사퇴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이 '소란'은 종적을 감춘다. 단순히 김만식 회장을 그 직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몽고식품'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회사에 타격을 입히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수모를 견뎌왔다는 A씨의 말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만약 우리가 A씨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면, 과연 그 부당함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 '용기 있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빈자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수모를 견뎌야 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지 않겠는가.


A씨는 "김만식 회장과 저와의 문제이지 저와 몽고식품의 문제는 아니"라면서 "몽고식품에 피해가 가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회사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을의 마음 씀씀이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물론 이 사안은 몽고식품과 A씨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김만식 회장과 A씨만의 문제라고 볼 순 없다. 갑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삶의 무게 때문에 이를 견뎌내고 있는 수많은 을의 문제다.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특히 운전기사의 경우에는 고용자와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밀착된 채 지낼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 탓에 제도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몽고식품의 사훈이 '사원을 가족처럼'이라는 사실은 '사람이 미래'라던 두산 그룹의 사례처럼 실소를 머금게 한다. 어쩌면 이 실소로부터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정을 조율하는 전문직인 '비서'나 운행을 담당하는 '운전기사'의 개념과 역할이 사원을 가족처럼 대하는 데 익숙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왜곡된 것은 씁쓸하지만 자연스러운 결과다. 무리한 야근과 잔업을 요구하고, 회사를 위해 회상을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장님을 '모셔야' 하고, 그의 명령에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답은 간단하다. 사원을 그저 '사원'처럼 대하는 것. 그 이상의 관계(역할, 책임)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공정한 계약에 의해, 공정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갑'들의 인격적 성숙을 요구하거나 '겁'을 먹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방법이다. 이를 바로잡는 사고의 전환,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회사 내에서 수직적인 개념인 '부하'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의 정립이 요구된다. 시민들의 선한 분노가 변화의 초석으로 기능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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