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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예능, 나영석 PD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너의길을가라 2014. 1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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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하는 프로그램은 다 비슷해요. '1박2일'은 시골로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고, 여행만 따로 떼서 만든게 '꽃 시리즈', 시골만 떼서 만든게 '삼시세끼'에요. 제가 하는 일이 굉장히 새롭거나 트렌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변주하는 정도에요. 다만 방법론이 다르죠. 여러 시골을 볼 것이냐, 하나를 정해서 찬찬히 들여다볼 것이냐 하는 방법이었어요."



2014년 예능을 이야기하면서 '나영석 PD'를 빼놓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2014년 예능은 나영석이다'라고 할 만큼 나영석 PD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KBS 2TV <1박 2일>을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던 그였지만, tnN으로 회사를 옮긴 후에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내놓는 기획마다 성공을 시키면서 대한민국 예능을 선도하는 선구자의 위치에 올랐다.


꽃보다 누나 (2013.11.29. ~ 2014.01.17. 최고시청률 9.164%)

꽃보다 할배 스페인편 (2014.03.07. ~2014.05.02 최고시청률 6.835%)

꽃보다 청춘 페루편 · 라오스편 (2014.08.01. ~ 2014.10.10. 최고시청률 5.771%)

삼시세끼 (2014.10.17. ~ 최고시청률 8.746%)



'꽃보다' 시리즈는 무엇보다 기획력과 섭외력이 돋보였던 프로그램이었다. 우선, 할배들이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순재 · 신구 · 박근형 · 백일섭 등 충격적일 만큼 신선한 '선생님' 조합을 짜고, 이를 끈덕진 섭외를 통해 현실로 만들어낸 나 PD의 능력과 근성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인생의 황혼기(이런 표현을 마뜩잖아 하실지 모르겠지만)에 접어든 할배들이 여행 속에서 겪는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감동에 젖어들었다. 인생의 지혜가 물씬 느껴졌고,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후의 시리즈들이 기획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나 PD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차례차례 기획된 <꽃보다 누나>에서는 윤여정 · 김자옥 · 김희애 · 이미연이라는 꿈의 조합을 완성시켰고, <꽃보다 청춘 페루편>에서는 90년대를 풍미했던 40대 뮤지션 윤상 · 유희열 · 이적을 섭외했고,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서는 <응답하라 1994>로 대중에게 알려진 유연석 · 손호준 · 바로를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였다.


예능에 익숙하지도 않고, 언뜻 봐서는 예능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우들과 가수들이 선뜻 나영석 PD의 섭외에 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나 PD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인간적인 신뢰 때문 아닐까? 나 PD는 출연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자막과 편집을 통해 이를 극대화해 재미를 상승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세련된 도시 남자 이미지의 이서진을 '짐꾼'으로 캐릭터화 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이후에도 이서진은 나 PD와 티격태격하면서 톰과 제리와 같은 관계로 방송에 그려지면서 <삼시세끼>에서도 '노예'의 자격으로 궁극의 호흡을 자랑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직진순재'라든지 '구야형' 등은 특성에 최적화된 별명으로 친숙함을 더했다. 끊임없이 음식을 탐하는 김희애에게는 '잡식소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PD로서의 역량은 결국 출연을 결심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줬을 것이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라 나 PD의 특유의 성실함과 진실됨이 출연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를 통해 형성된 PD와 출연진 사이의 통(通)함은 상상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리고 나 PD의 프로그램들은 어김없이 대박으로 귀결됐다.



이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솔직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 권력구조 안에서 대답하지 진심을 잘 말하지 않는다. 나보다 선배니까, 나보다 후배니까…. 동료라고 하면 그 관계를 떠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알몸을 보여주고 상대도 자기 알몸을 보여주는 관계여야 한다"는 그의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는 늘 예능이 장르의 최첨단을 걷는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 가만히 보면 (예능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래 있던 기본 장르와 오히려 유사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앞으로 연예인보다 일반인이 주요 출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갖는 무게가 있다. 그것만 잘 포착하면 굳이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딱 <인간극장>이더라.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프로인 거다. '아, 먼 길을 돌아서 원형으로 가는구나' 이런 이야기를 우리끼리 자주 한다."


'예능의 진화는 최종 형태가 뭘까'라는 물음에 대해 <인간극장>이라고 대답했던 나 PD는 그에 한발 다가선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강원도 정선의 옥순봉, 그 시골에서 그저 하루에 세 끼 밥을 챙겨먹는 프로그램이 던진 반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프로그램 초반부터 이서진은 "망했어"라는 말을 수없이 했지만, 그럴수록 <삼시세끼>는 더욱 고공행진을 했다.



<삼시세끼>의 성공 포인트는 차가운 도시의 삶에 지칠 대로 지친 도시민들의 가슴 속에 있던 전원 생활에 대한 동경과 향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거기에 나 PD의 기존의 장점이 캐릭터 잡기와 편집 능력, 그리고 섭외력이 더해지면서 <삼시세끼>는 그야말로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또, 흥미로운 것은 철물점 둘째 아들 동식이처럼 일반인마저도 띄우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나 PD가 인터뷰에서 밝힌 예능의 귀결은 인간극장이고, 일반인이 주요 출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부분을 떠올리게끔 한다. 아마도 나 PD는 <삼시세끼>를 통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실험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삼시세끼>를 보고 있노라면 연예인과 일반인이 거리감 없이 함께 어우러지고, 차츰 그 비중이 높아지는 형태의 예능의 도래도 머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 지난 15일 tvN 관계자는 "나영석 신효정 PD가 연출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이 출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SNS를 비롯한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다. 나 PD의 놀라운 섭외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간에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 어찌됐든 기대감이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삼시세끼>의 스핀오프인 어촌편이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014년 대한민국 예능의 중심이자 선구자였던 나영석 PD가 2015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과연 그가 말했던 예능의 최종 형태라는 <인간극장>은 어떤 모습일까? 하나의 브랜드로 확고히 뿌리를 내린 나 PD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대한민국 예능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뚜렷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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