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동주>, 우리가 몰랐던 동주와 몽규가 건네는 청춘의 위로

너의길을가라 2016. 2. 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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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이 영화에는 총 13편의 시(詩)가 등장한다. 동주의 시다. 시인은 자신의 시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 시가 어떤 상황에서 쓰였을지 고민을 거듭'했다는 이준익 감독은 적절한 지점에 시를 잘 보탰다. 물론 그 '덧댐'은 다분히 소설적이고, 영화적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개연성을 살리고, 드라마의 내용을 잘 전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주를 잘 이야기한다.



스물여덟의 동주(東柱). 일제 강점기라는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암울한 시기를 살아야 했던 20대의 동주. 이름도, 언어도, 꿈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을 살아냈던, 살아내야만 했던 청춘(靑春)의 동주. 문득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아, 우리는 동주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도대체 동주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동주는 누구인가. 


윤동주는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타이틀로 설문조사를 하면 1, 2위를 다투는 시인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인 '서시(序詩)'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1, 2위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린다. 참고로 그와 순위를 엎지락뒤치락하는 시인은 김소월이고, 시는 진달래꽃이다. 어찌됐든 윤동주가 한국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 기억 속에 아련한 인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별히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시를 곧잘 외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인간 동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민'을 했고, 그가 느꼈던 '부끄러움'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왜 묻지 않았을까. 그를 그이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를 담은 영화의 제목을 '동주'로 정했던 건 그 때문이 아닐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영화를 감상하겠지만, <동주>는 흑백영화다. 사실 영화와 관련된 수업을 들었던 대학시절 이후 흑백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낯섦에 '이질감'이 들다 금세 흑백영화 특유의 몰입도에 빨려든다. 이준익 감독은 '왜' 굳이 <동주>를 흑백영화로 찍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우리가 기억하는 윤동주 시인의 이미지가 흑백 사진 속에 있기 때문이었고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화려한 컬러보다 흑백이 더 진실성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포장이나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야기의 진정성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 선택이었다."


"두 번째는 적은 예산으로 가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윤동주의 삶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흑백의 시, 그리고 영화 <동주>, https://brunch.co.kr/@cinehvwm/2?dmp_channel=wculture)




영화 <동주>를 보고 난 후에 느끼는 것이지만, 만약 이 영화가 화려한 컬러로 그려졌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진정성'을 추구했던 이준익 감독의 선택은 적절했던 것 같다. 물론 '적은 예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아인을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이준익 감독의 이야기도 있지 않았던가.


흑백영화는 그 특성상 '인물'에 집중하게 만든다. 포커스가 인물에 오롯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집중력이 있다. 몰입도가 강렬하다. 또, 담백하고 담담하다. 직접적으로 총과 칼을 들고, 만주 벌판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덜' 영화적인 삶을 살았던 동주였던 만큼 흑백의 톤이 그를 더욱 잘 보여준다. 



"평생을 함께 한 오랜 벗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이 어떻게 시대를 이겨 냈고, 그 시가 어떻게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이 작품을 시작했다. 28세에 삶을 마감한 신념 가득했던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가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식지 않는 청춘으로 가슴에 남아 있길 바라고, 그보다 어린 이들에게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갔는지 느끼면서 자신의 삶에 큰 가치를 얻길 바란다" (이준익 감독)


사실 영화 <동주>는 '동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송)몽규'에 관한 이야기다. '동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몽규'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만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고 받았다.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이자 평생을 함께 했던 '벗'이었던 두 사람은 '세부적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몽규가 '혁명가'로서의 격렬한 삶을 살았다면, 동주는 그 폭풍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진 삶을 살았다.


송몽규의 고종사촌이자 작가인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에서 "송몽규의 행적이 밝혀져야만 윤동주의 삶 역시 제대로 해명되는 부분이 있"다고 밝히면서, "그와 윤동주는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에 걸쳐 서로 집요하게 연결된 삶을 살았"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동주>에서 몽규가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인제는 굶을도리밖게 없엇다.

잡힐것은 다잡혀먹고 더잡힐것조차없엇다.

"아-여보! 어디좀 나가 봐요!"

안해는 굶엇것마는 그래도 여자가 특유(特有)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송몽규(당시에는 송한범이란 아명을 쓰고 있었다),「술가락」 중에서


문학에 별다른 뜻이 없던 몽규는 「술가락」이라는 작품으로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중학생이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집안의 어른들은 그 소식에 들썩이고, 동네는 잔치 분위기다. 시를 쓰던 젊은 동주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강한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낀다. 동주를 연기한 강하늘은 이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하얗고 천사같고 우주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동주> 속 윤동주 시인은 송몽규에게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그도 어쩌면 그 시절에 살았던 젊은이일 뿐인데 그런 것은 다 배제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놨다는 걸 반성하게 됐다."



만약 <동주>를 보고 '윤동주'에 덧입혔던 '고정된 이미지'들을 약간이나마 지워낼 수 있었다면, 우리는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았던 몽규를 평생토록 '따라다녔던' 동주는 끝내 '나는 몽규의 그림자였다'고 고백하고 만다. 그런 동주를 마주볼 수 있었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송몽규는 사진만 봤을 때 가녀린데 신념을 위해선 몸을 던지는 행동가였다. 윤동주는 머뭇거리고 주춤거렸지만 결국 세상에 시를 남기며 자신을 증명한 결과가 아름다운 인물이라면, 송몽규는 결과는 없지만 과정이 매우 아름답다 할 수 있다. <동주>는 송몽규의 과정과 윤동주의 결과이다. 우리도 살면서 죽기 전에 거참한 결과를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정말 치열하게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송몽규도 우리와 같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려 했던 아름다운 과정들을 겪었던 것이고 그 과정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준익 감독)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라고 불리는 박정민은 그 단단함과 우직함을 몽규를 연기했는데, 강하늘의 연기만큼이나 그의 연기도 일품이다. 특히 영화 끝부분에서 '거짓 자백서'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하는 고등형사(김인우)에게 동주와 몽규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대로 '항의'하는 모습은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기개는 그 시대를 부끄럽지 않게 만든다.


'신파' 없이 '과잉' 없이 두 사람의 일생을 좇은 <동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반성의 미학이 담겨 있는 동주의 시는 영화 곳곳에서 읽힌다. 그저 동주였던 강하늘은 진실된 감정과 담담한 목소리로 그의 삶을 이야기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동주'와 몽규',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아갔던 가장 빛났던 청춘 '동주'와 몽규'의 이야기에 가슴 따뜻한 '위로'를 건네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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