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화물연대 파업을 보도하고 언론과 받아들이는 여론의 태도

너의길을가라 2012. 6. 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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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



어제 1767대 이어 참여 갈수록 늘어… 물류차질 심상찮다 (문화일보)


화물연대 이틀째 운송거부..전국 곳곳 물류차질 (연합뉴스)



전형적인 보도입니다. 일종의 받아쓰기입니다. 물류차질이 우려된다, 파업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 예견된다, 피해액은 얼마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이런 말을 씁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와 관련, "국민경제를 볼모로 집단행동을 강행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로서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업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대부분의 기사들이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전에도 벤자민 카도조의 말(법관으로 재직 중 중립적이었다고 생각한 판결은 나중에 보니 강자에게 기울어진 판결이었고, 재임 중 약자에게 보다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한 것은 나중에 보니 중립적이었다)을 인용하면서,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정의롭고 공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의 편에 서서 특정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중립적인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 속 들어가서,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화물연대의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싫어하는 사람들 일까요?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힘들고 고된 일을 묵묵히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일입니다. 그리고 힘들지 않은 일도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끄러우니까 참고 인내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누구도 불행한 삶을 살 이유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인간답게 살 권리, 그것을 찾기 위해 파업에 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때문에 따라오는 조금의 불편이 있더라도 우리는 감내하고 오히려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기』를 쓴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거대한 돈과 권력 앞에는 머리를 바짝 숙이고, 같은 선에 서 있는 노동자들끼리는 연대는커녕 서로를 갉아먹으려 애를 쓰지 않나요?


정부는 조금이라도 더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불법적인 파업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억압합니다. 과연 화물연대의 파업만 그렇게 생각할까요? 모든 파업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모든 파업.. 결국 우리 모두.. 지금의 정부에겐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기계, 그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겁니다. 


조금만이라도 더 지켜줍시다. 조금만이라도 서로 힘을 북돋아 줍시다. 이건 단지 화물연대만의 파업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파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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