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양육자는 말 그대로 '전부'이다. 하나의 세계이고, 안식처이다. 또, 어떤 애착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 따라서 아이의 문제를 살피려면 언제나 양육자를 짚어봐야 한다. 22일 방송된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에는 9살 금쪽이(남)를 육아 중인 (외)할머니와 엄마가 출연했다. 엄마는 이혼 후 생업에 전념하느라 친정 엄마에게 육아를 부탁한 상황이었다.
금쪽이는 엄마와 있을 때는 존댓말을 쓰고 애교를 부리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유독 할머니에게만 욕설과 폭행을 사용하는 등 공격성을 보였다. 엄마는 자신과 있을 때는 문제가 없다며 할머니가 지나치게 허용적이라 주장했고, 할머니는 6~7개월 전부터 시작된 공격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며 육아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녀의 사이는 지나치게 냉랭해 보였다.
할머니와 함께 하교한 금쪽이는 혼자 손을 씻고 환복까지 마친 후 숙제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씻어.", "숙제해."라고 지시하면 금쪽이가 수행하는 식이었다. 엄마와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차분하고 정제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루해진 금쪽이는 태블릿을 켰고, 할머니의 지시를 무시했다. 그러더니 "벌줘야겠어!"라며 팔을 깨물었고, 반말로 대들고 주먹으로 때렸다.
할머니가 정색하고 혼내자 이번에는 손을 꺾으며 공격했다. 점점 거세지는 공격에 할머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화를 내던 금쪽이가 갑자기 싹싹 빌며 우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확확 바뀌는 태도가 의아할 정도였다. 금쪽이는 어떤 아이일까. 오은영 박사는 학교 생활에 대해 질문했고, 돌아온 대답은 "원만한 편"이었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나 난폭한 아이는 아니었다.
"제가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는데요. 할머니와 금쪽이가 함께하는 일상 중, 특히 상호작용하는 대부분의 시간의 내용이 할머니의 지시뿐이에요." (오은영)
오은영은 할머니의 명령적, 지시적인 태도를 언급했다. 육아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지적한 것이다. 할머니는 딸 떄문에 육아를 하고 있다는 입장으로, 순자를 잘 키워야 내 딸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으로 엄격한 육아를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학교는 지켜야 할 규칙이 더 많은데도 원만하게 생활하고 있다면, 주양육자인 할머니와 금쪽이의 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추론이 가능하다.
금쪽이는 할머니가 눈앞에 꼭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시도때도 할머니를 호출했는데, 할머니가 째깍째깍 반응하지 않으면 악을 쓰거나 말썽을 부렸다. 의아한 점은 금쪽이의 행동이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할머니를 괴롭히는 듯하다가도 "'사랑해'라고 말해."라고 소리치고, 자신의 뜻대로 되니 애교를 부렸다. 느닷없이 아기 흉내를 내며 퇴행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오은영은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양육자와 잠깐 떨어져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할머니와 못 떨어지는 이유는 불안이 높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또, 퇴행 행동에 대해서는 ①사랑이 부족하다는 신호 ②스트레스가 많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금쪽이가 할머니와 있을 때 순식간에 폭력적이다가 아기처럼 사랑을 요구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찰 카메라는 금쪽이에게 향했던 시선을 모녀 관계로 돌렸다. 마트에 간 금쪽이는 할머니가 사고 싶은 물건을 못 사게 하자 세게 밀치며 폭력적으로 굴었다. 엄마는 이를 못본 척하며 아무런 훈유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금쪽이의 폭력 문제를 토로했으나, 엄마는 오히려 할머니 탓을 하며 반박했다. 할머니는 딸의 타박에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후에도 할머니와 금쪽이의 갈등은 계속됐다. 금쪽이의 폭력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주먹으로 얼굴을 건드리는 위협적 행동은 거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금쪽이는 착한 아이로 돌아오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할머니는 그런 금쪽이를 품에 안은 채 "할머니를 자꾸 때리면 나쁜 생각을 할 수 있어."라며 친절한 협박을 했다. 서울로 가버리겠다며 겁을 주기도 했다.
오은영은 따스한 얼굴로 협박하는 할머니의 훈육 방법을 지적했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가르쳐야 했던 상황임에도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는 얘기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또,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는 극단적인 말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금쪽이가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할머니는 신이 난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쪽이는 공부하다 말고 할머니를 찾았다. TV를 보고 싶다고 요구했는데, 할머니가 거부하자 주먹을 쥐고 위협하더니 뺨을 때렸다. 충격을 받은 할머니가 훈육을 시도했으나, 금쪽이는 다시 할머니의 뺨을 가격했다. 본인도 놀랐는지 황급히 사과를 했지만, 할머니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금쪽이는 안아달라고 오열했고, 할머니는 용서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했다.
금쪽이의 폭력적인 행동은 반도시 교정해야 할 행동이 분명하다. 오은영은 그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도 할머니와 금쪽이의 애착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혼란형 불안정 애착'.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 폭력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 노출된 경우에 형성되는 흔하지 않는 유형이었다. 긍정과 부정의 상대가 동일인일 때, 자녀는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품고 된다.
금쪽이의 폭력성은 엄마에게까지 확장되어 갔다. 평소와 달리 욕설을 내뱉고 공격성을 보이는 금쪽이를 본 엄마는 충격에 휩싸였다. 오은영은 금쪽이가 오랜 시간 양육자와의 경험에서 힘의 부정적인 경험을 많이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금쪽이는 전형적으로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스타일이었다. 이는 주양육자인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일 게다.
한편, 술을 마시고 귀가한 엄마는 친정 엄마에게 왜 어린 시절 자신을 예뻐해 주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다. 부모로서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항의했다. 모녀 사이에 흐르던 냉랭함의 원인이 밝혀졌다. 상처를 준 걸 인정하고 사과를 원하는 딸과 도박과 술주정 등을 일삼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본인도 힘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엄마의 대화는 계속 겉돌았다.
생업을 위해 야간 일을 해야 했던 엄마의 어려움도 이해가 됐고, 엄마가 없는 밤에 아빠와 단둘이 있어야 했던 딸의 공포도 이해가 됐다. 두려움에 떨었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낸 딸은 하루빨리 집을 벗어나고싶은 마음뿐이었으리라. 스무살부터 돈을 벌어 독립을 선언하자, 엄마는 자신도 데려가라며 딸에게 호소했다. 딸은 그런 엄마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들의 관계는 피폐할 대로 피폐했다.
오은영은 부모는 부모의 위치에서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식에게 줘야 할 사랑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행한 가정에서 무력했던 과거지만 지난날의 고통에서 용서받을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결국 모녀의 갈등을 풀어내야 금쪽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양육자 아래에서 행복한 아이가 자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혹시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
"미안하지.. 후회할 정도로 미안해."
금쪽이는 집 안에 CCTV를 설치하고 싶었다는 속마음을 고백했다.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무엇이 그리 겁이 났을까. "혼자 잘 때 떠날까 봐."라는 말에 할머니와 엄마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금쪽이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금쪽이가 바랐던 게 자신이 어린 시절 바랐던 것이라며, 생업을 이유로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책했다.
오은영의 금쪽 처방은 'GIVE LOVE'였다. 문제의 수위는 높지만 금쪽이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었다. 이제 올바른 훈육이 필요한 때였다. 그 전에 모녀의 오래 묶은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야 했다. '모녀 애착 솔루션'의 일환으로 심리극을 통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진정어린 사과를 건넸고, 딸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작정하고 금쪽이와 놀아주고 요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관계를 돈독히 하고, 애착 관계를 교정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게임을 더 하고 싶다는 금쪽이에게 원칙과 규칙을 가르쳤다. 등을 맞대고 기다리는 훈련을 통해 금쪽이가 스스로 진정할 수 있게 도왔다. 떼를 쓰던 금쪽이는 20분 후 먼저 사과를 건넸다. 할머니는 감정싸움 대신 분명하게 지시하며 훈육을 이어갔다.
일터에 있는 엄마는 금쪽이와 영상으로 연락하며 불안을 잠재워 나갔다. 하염없이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던 금쪽이는 틈틈이 엄마와 소통하며 안정을 되찾아갔다. 또, 세 가족은 함께 나들이를 나가 행복한 추억들을 쌓아나갔다. 상처를 딛고 화해한 모녀가 금쪽이의 든든한 양육자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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