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방송된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의 주인공은 6살 여자아이였다. 10월이면 만 5세가 되는 금쪽이는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엄마'뿐이었다. 물론 뒤늦게 말문이 트이는 경우도 있지만, 금쪽이는 또래에 비해 언어 지연이 현저했다. 수용언어는 어느 정도 되는 듯했으나, 표현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엄마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금쪽이네는 야외로 나가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온가족이 합심해서 금쪽이가 말을 하도록 유도했지만, 금쪽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목이 말라도 물을 달라고 요청하기보다 물통을 향해 손부터 뻗고 봤다. "금쪽아, 그럴 때는 물 달라고 하는 거야, 물!"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으나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오은영 박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엄마는 금쪽이와 한글 공부를 하며 틈틈이 언어 자극을 주려 애썼다. 하지만 금쪽이는 그 시간을 힘겨워했다. 안 그래도 말을 많이 하는 일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엄마는 금쪽이가 어렸을 때 보채지 않아서 혼자 놀게 뒀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방치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 후 금쪽이에게 말을 많이 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금쪽이는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했다. 친구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 금쪽이는 한쪽으로 옮겨 가 혼자 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같이 놀자고 제안했지만, 금쪽이는 아예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엄마는 혹시 금쪽이가 '자폐 스펙트럼'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대학 병원 검사에서도 의심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오은영은 금쪽이의 경우 감정적 상호 작용이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미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눈맞춤(사회적 상호 작용의 기본적인 비언어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했다. 금쪽이의 눈맞춤은 일방적이었다. 본인이 궁금하거나 필요할 때는 맞추지만, 상대방이 요구할 때는 철저히 외면했다. 금쪽이는 '자폐 스펙트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자폐 스펙트럼이란 자폐증을 비롯해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증후군을 통칭한다. 상호 작용을 담당하는 대뇌 기능의 문제가 자폐 스펙트럼의 원인이다. 그래서 '선천적인 신경학적 오류'라고 일컫는다. 오은영은 아직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 '양육을 잘했더라면 안 생기지 않았을까'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못박았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상호 소통의 의도가 있는지 여부이다. 금쪽이의 경우에는 소통의 의도라기보다 조건 반사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엄마의 소리 자극에 익숙해져서 반응하는 식이었다. 오은영은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일방적인 의사 표현에 그치며 사회적 상호 작용의 도구로 언어를 사용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금쪽이는 '호명 반응'을 한다기보다 '큰 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름의 뜻이 나 자신을 의미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나아가 '아빠', '엄마', '선생님' 등 호칭의 대상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소꿉놀이 속 상징이나 대상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침입'이라 느끼고 있었다.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도 침입 상황이라고 느껴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어.. 그.. 자폐 스펙트럼의 임상 양상이 있어요. 그래서 엄마께 이 말씀을 드리는 건, 저는 제가 틀리길 정말 원해요. 아이가 더 편안한 쪽이길 바랍니다."
과연 금쪽이는 자폐 스펙트럼일까. 오은영은 1:1 특별 상담을 하며 긴 시간 금쪽이를 관찰했다. 그리고 자폐 스펙트럼 양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우려했던 결과를 접한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오은영은 자신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위로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미어질 뿐이었다. 2년 전, 갑작스러운 위암으로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으리라.
오은영은 어떤 점을 근거로 금쪽이에게 자폐 스펙트럼 양상이 있다고 판단했을까. 그는 자폐 스펙트럼의 3가지 특징이 있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첫째, 반복적인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를 '상동 행동'이라고 하는데, 손을 반복해 움직인다든지 날갯짓처럼 손을 위아래로 흔든다든지 몸을 앞뒤 혹은 좌우로 흔드는 행동을 말한다. 금쪽이는 여기에 해당됐다.
둘째, 순서와 위치 등 항상성에 집착하는 것이다. 뭐든 제자리에 둬야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이처럼 사소한 행동을 마치 의례처럼 여기고 몰두하는 특성이 있다. 셋째, 특정한 것에 집착한다. 그 집착의 대상은 숫자, 알파벳 등으로 한정된다. 금쪽이의 경우 그 대상이 책이었다. 이런 점을 미뤄보아 금쪽이가 말문이 트이지 않은 건 단순한 언어 발달 지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위해 꼭 알아야 할 것은 받아들일 만큼의 자극을 줘야한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자극을 주면 과부화가 걸리기 떄문이다. 단순히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아이라면 경험을 쌓게 하는 게 필요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아이는 해당되지 얘기다. 그렇다고 고립시켜 키우라는 뜻은 아니지만, 과도한 자극은 아이에게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조절이 요구된다.
또, 자폐 스펙트럼 아이는 직접 보지 않은 것을 추론해서 이해하는 걸 어려워하는 반면 시각적인 정보를 가장 잘 이해한다. 따라서 앉으라고 이야기할 때 시각적으로 자리를 짚어주고 청각적으로 앉으라는 소리를 통합해 이해하게 하면 효과적이다. 가령, 금쪽이처럼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는 행동을 하면 엄하게 혼내기보다 화살표를 붙여 이동 방향을 알려주는 게 좋다.
한편, 금쪽이의 속마음을 알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으나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금쪽이는 말없이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책장에서 무언가를 집어왔다. 과연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금쪽이가 가져온 건 가족사진이었다. 금쪽이만의 세상에는 가족이 있었다. 여섯 살 아이가 보여준 뜻밖의 표현에 스튜디오는 눈물바다가 됐다.
"사람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어요. 저는 발달장애 아이들, 자폐 스펙트럼 아이들 중에도 직장 생활도 하고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아이도 많이 봅니다. 엄마가 가르쳐 줄 게 많거든요. 그러려면 엄마가 건강해야죠. 그리고 의논할 일은 저하고 의논합시다."
오은영은 "사람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또, 희망과 의지를 불어넣었다. 금쪽가 지닌 그만의 가치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자폐'라는 고민만 붙들고 좌절하기보다 정상 범위 도달을 목표로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고,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니까 열심히 해보려고요.'라며 밝게 웃었다.
오은영의 금쪽처방은 '사진으로 마음을 말해요!'였다. 금쪽이에게 동작을 직접 보여주며 말로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기 위해 즉석 사진 카메라로 다양한 상황을 촬영해 소통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 등 꼭 필요한 소통을 해야 할 때 엄마에게 그에 맞는 사진을 보여주게 했다. 또, 이동 동선을 알려줄 때 화살표를 활용했다.
엄마는 금쪽이를 위해 잘 몰랐던 자폐라는 세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든 감각이 증폭된 세계를 살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멀어진 금쪽이를 이해하게 됐다. 비록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전개였지만, 아이는 느려도 반드시 성장하기에 엄마는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가족들의 노력은 분명 금쪽이를 조금씩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금쪽이네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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