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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특별하게 만든 <알쓸신잡 2>, 그들의 여행은 왜 남다를까?

너의길을가라 2017. 12. 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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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예능에서 워낙 많이 '소비'됐던 공간이다. JTBC <효리네 민박>은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효리의 집을 민박으로 활용하며, 제주도를 제법 깐깐하게 훑었다. 제주도와 그곳에서의 삶을 매우 이상적으로 그려낸 프로그램이었다. 그뿐인가. tvN <신혼일기2>, JTBC <밤도깨비>, 채널A <도시어부> 등 제주도의 일부분을 잠깐씩 담아간 프로그램은 부지기수다. 곧 tvN <강식당>까지 제주도에 터를 잡고 가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제주도는 일년 내내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노출 빈도가 높아지는 만큼 식상함도 커졌던 게 사실이다. 제작진은 어김없이 카메라 속에 제주도의 유려한 경관을 담고서 만족스러워 했고, 출연자들은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특산물을 맛보며 기계적인 감탄사를 연발했다. 프로그램의 제목만 바뀔 뿐 1차원적인 (제주도) 소비 패턴은 반복됐다. 고민 부족이었다. 당연히 지루했다. 좋은 것도 하루이틀 아닌가. TV에서 제주도를 배경으로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또, 제주도야?’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무 많이 보여져서 더 이상 매력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제주도였지만, 그 공간도 tvN <알쓸신잡 2>의 잡학박사들이 훑으니 완전히 달라 보였다. 제주도가 새롭고, 또 특별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그 이유는 제주도를 대하는 잡학박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제주도를 소비하기에 앞서 먼저 ‘이해’하고자 했다. 제주도가 언제부터 관광지로 유명해지게 됐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으로 여행의 포문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제주도의 아픈 역사를 조명했다. 


황교익 : 아주 예전에 제주도는 유배지였고 전쟁때는 피난지였다. 이후 80년대 와서야 신혼여행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유시민 : 원래는 탐라국이라고 해서 독립한 문명이었다. 통일신라 때부터 문화적 교섭이 시작됐고, 고려 때 행정체계에 편입됐다. 하지만 차별을 심하게 받았던 지역이라 사람들이 육지로 이주를 시작했다. 출륙 금지령이 내려져 국가의 허락 없이는 제주도를 나가지 못했다. 조선 시대 내내 차별과 배제의 땅이었다. 대륙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을 제주도는 유배, 소외, 차단, 억압, 고립의 지역이었다.


황교익 : 일제강점기에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1/5이 이주해버렸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주는 더 살기 어려워졌다. 


유시민 : 해양세력이 세계를 제패하는 시대가 되면서 제주도는 지금 열린 시기가 됐다. 1964년 통금이 통째로 먼저 풀렸고, 1970년대부터 일본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국내 관광 소득이 높아지면서 살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잡학박사들은 제주도민들의 가장 아픈 상처인 '제주 4 · 3 사건(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까지 다뤘다. 제주도에 정착해 귤 농사를 짓고 있는 루시드폴이 등장하자, 안테나의 수장인 유희열은 자사의 소속가수를 소개하면서 그가 4 · 3 사건을 다룬 곡('4월의 춤')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으로 4 · 3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고, 황교익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유시민은 "5·10 남한 단독 선거가 예고됐고, 제주도 안에 남로당 조직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시작됐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남로당 350여 명이 제주 경찰서 지서들을 공격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학살과 탄압이 퍼져나가게 됐고, 육지에서 들어온 병력에 의한 살육과 그 반대편에서도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제주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 골자였다. 4. 3 사건에 대한 그의 배경 설명이 다소 미흡했을지라도 방송에서, 그것도 예능에서 4. 3사건을 정면으로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유시민 : 조금 의심이 되면 마구잡이로 죽였다. 제주 인구가 30만이 안 됐는데 사망자만 3만여 명이다. 


황교익 : 4.3 사건의 대표적 피해마을인 북촌리 너븐숭이 4 · 3 위령 성지를 다녀왔다. 하루만에 350여 명이 죽었는데, 명단이 쭉 이렇게 있더라고요. 그 옆에 나이가 이렇게 쓰여 있는데, 두 살, 세 살, 네 살.. 



역사를 다루자 제주도가 달리 보였다. 아니, 이제야 제주도를 제대로 만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우리의 제주도 탐방은 수박 겉핥기에 그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알쓸신잡 2>가 무거운 이야기만 전했던 건 아니었다. 우선, 유시민은 직접 장을 봐서 참돔 회를 시작으로 돔베고기 요리, 돌돔구이, 방어 맑은탕까지 코스요리를 준비해 수다를 위한 먹거리 세팅을 마쳤다. 유현준 교수는 돌하르방과 모아이 석상의 공통점을 이야기했고, 그밖에도 제주도 흑돼지의 기원, 거상 김만덕이 신여성의 표본인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여행 첫째 날의 배경이 북제주였다면, 둘째 날은 서귀포로 대표되는 남제주 지역이었다. 잡학박사들은 이중섭 거리, 추사관, 해녀 박물관, 다빈치 박물관, 정방폭포 등 제주도의 특색있는 명소들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했다. 제주도에 그런 장소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관광의 우선순위에 밀려 쉽사리 찾기 어려웠던 곳들이었다. 하지만 잡학박사들의 자세한 소개와 더불어 재미있는 수다가 어우러지면서 그 장소들은 제주도를 방문하면 꼭 들리고 싶은 워너비 장소로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서귀포로 피난살이 왔던 이중섭의 고달팠던 삶이 묻어 있고, 일본 국적의 아내와 알콩달콩 나눴던 편지가 보관돼 있는 이중섭 미술관은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유시민이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만큼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추사관은 또 어떠한가. 추사 김정희를 이해하기 쉽게 동선이 짜여 있는 건축의 미학은 놀라웠다. 또, 추사관의 외관은 세한도를 똑같이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할 만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감탄과 질투, 정방폭포에서 비롯된 노화와 영생에 관한 인문학적 또는 과학적 접근도 흥미로웠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제주도를 여행하고,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숱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봐왔다. 그래서 제주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쓸신잡 2> 제주편을 보고나서 제주도가 이처럼 다채로운 공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또, 제주도가 안고 있는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도 알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만큼 잡학박사들의 다양하고 수준있는 관점들이 제주도라는 공간을 제대로 바라봤던 것이리라. 이처럼 <알쓸신잡>의 잡학박사들은 여행에 대한 새로운 관점, 방식,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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