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우리는 비평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너의길을가라 2014. 12. 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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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11월 28일, 이재명 성남시장(성남 FC 구단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남FC, 꼴찌의 반란인가? 왕따가 된 우등생인가?'라는 글을 통해 심판 판정의 공정성 문제를 언급했다. (이재명 구단주 징계 논란, 그는 성역을 건드렸나?)그의 주장은 축구계를 뒤흔들었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기자들은 '발끈'했다. 이재명 시장도 자신의 발언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하며 맞섰지만, 시장은 상벌위원회에 징계회부 됐다. 남은 것은 '처벌'뿐이다.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은 축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1월 30일, 서울 삼성의 이상민 감독은 고양 오리온스와의 홈 경기 이후 작심한듯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감독은 "이후 비디오로 다시 볼 생각인데 4쿼터 3분 남을 때까지 오리온스는 파울이 없고 우리는 파울로 자유투만 8개 줬다. 골밑에서 심판이 콜을 불었으면 이해하겠지만 (보이는) 각도 나오지 않는 데서 불어제끼더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 감독은 한국농구연맹(KBL)으로부터 제재금 70만 원을 부과받았다.



이상민 감독의 경우에는 감독이나 선수가 판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KBL의 규정에 따라 제재금이 부과된 것이다. 규정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됐든 규정에 근거한 처분이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프로축구연맹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인지에 대해 판단을 해봐야 한다.


신문선 성남 FC 대표이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처럼, "연맹규정 36조 5항을 보면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심판판정에 관련해 부정적 언급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이 조항을 근거로 심판에 대한 비판을 장소와 시기를 불문하고 영구금지라고 한다. 심판에 대한 영구적 비판금지는 상급단체 AFC나 FIFA에도 이런 조항은 없다. 헌법에도 위반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심판의 권위? 물론 중요하다. 만약 경기 직후에도 심판의 판정에 대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상당한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감독과 선수들은 '전략적으로' 심판을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심판을 흔들고 나선다면 소신있는 판정을 내리기도 힘들어질 수 있다.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단순히 대놓고 비판할 수 없다고 한다고 해서 '권위'가 지켜질까? 분명히 심판도 실수와 잘못을 하고, 이에 대해서 정당한 창구를 통해 비판은 제기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심판도 그러한 비판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향상시켜야 한다. 심판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판정에 대한 비평 때문이 아니라, 심판들의 수준 저하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무턱대고 모든 비판을 가두고, 덮어두려고 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금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팬들의 원성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합리적인 비평이 막혀 있는 건 '스포츠'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분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이런 일들은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고 무섭게 호통치는 식으로 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어찌보면 '분열'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가?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부장판사 이범균) 판결을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빗대 비판했던 김 동진 수원지법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지난 3일 법관윤리강령 제2조(품위유지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러한 징계는 과연 합당한 것일까? 법관이 다른 법관의 판결문을 검토하고 나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일일까?



이미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확정된 사건에 관한 비평이나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금지돼서는 안 된다"고 권고의견을 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징계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법관징계위원회(위원장 민일영 대법관)는 "사건의 판결을 비난하고 해당 재판장에 대한 명예훼손적 표현을 포함한 글을 게시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결국 '괘씸죄'적인 성격이 짙은 징계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봐도 '침묵을 하라는 신호'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은 수많은 법조인들이 모순을 지적했고, 굳이 법조인이 아닌 일반인이 보더라도 억지스러운 논리적 전개가 선명했다. 스스로 반성을 해도 시원찮은 판에 그에 대해 비판한 판사를 징계하는 법원의 모습은 '경직(硬直)' 그 자체다. '나는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누군가 너의 말할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면 나는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요체(要諦)가 아니겠는가?


사회 곳곳에서 '비평의 자유'가 제한되고, 심지어 사라져가고 있다. 경직된 사회의 분위기는 곧 개인들의 위축을 가져온다. 그 어떤 불평불만의 아우성이 없고, 따지고 드는 비판의 목소리도 사라지는 것이 이상적(理想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은 그 '거대한 침묵'을 마주하는 순간 깨지게 된다. 그때가 돼서 후회를 해봐야 늦으리.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정치인의 뼈있는 농담은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다. 그 거대한 침묵들이 어떤 '전복(顚覆)'을 가져왔는지는 이미 역사가 숱하게 증명해보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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