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여름 더위 이기는 방법? '제철 행복'에 담겨 있다

너의길을가라 2024. 8. 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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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살다보면 '일상'을 놓치게 된다. 어떤 계절마다, 어떤 순간마다 즐겨야 할 것들이 많을 텐데, 밥벌이에 급급하다보니 많은 것들을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꽃놀이, 단풍놀이는 남의 일인듯 순식간에 지나가고, 끝없이 이어지는 열대야나 강추위 앞에서만 현실을 자각한다. '왜 이렇게 덥(춥)냐. 진짜 못살겠네.' 그럴 때마다 삶은 점점 더 편평하고 협소해진다.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보자. 우리 조상들은 '절기(節氣)'를 살았다.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기후를 구분했다. 물론 날씨가 중요한 농경 사회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자연이 선사하는 계절이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시기에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선물 같은 순간들을 만끽했다. 그것이 바로 24절기이다. 입춘(立春), 하지(夏至), 동지(冬至)같은 대표적인 절기들은 많이 들어봤으리라.

'제철 행복(인플루엔셜)'은 "모두가 고단하게 살아가는 와중에 틈틈이 행복을 느낄 수 있길" 바랐던 작가 김신지가 제철 감각을 키우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이를테면 우수(雨水)에는 "이른 봄나물을 찾아 먹는 것으로 봄이 온 것을 기념"하고, 하지에는 햇감자로 만든 음식과 맥주를 맛보고, 밤 산책이 제철인 추분(秋分)에는 고궁의 달빛기행이나 별빛야행 일정을 알아보라는 것이다.

생각하보면 절기마다 형형색색 달라지는 기후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며 살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날의 날씨, 그러니까 도대체 몇 도까지 올라가는지, 오늘 밤에도 열대야 속에서 잠을 자야하는지, 갑자기 소나기(이젠 스콜에 가깝지만)가 쏟아지지는 않는지 확인하기에 온 정신을 쏟았다. 다시 말해서 날씨와 계절이 무미건조한 '정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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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던 것들. 그걸 언젠가부터 까맣게 잊고 살면서 날씨와 계절은 슈퍼컴퓨터가 알려주는 '정보'로만 여기게 됐다. 계절을 들여다볼수록 오랫동안 잊고 살던 그 감각을 되찾고 싶어진다. 절기는 공부해서 익히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며 내 곁의 계절을 감각하는 일이다." (p. 40)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랄까.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그 때는 계절을 감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잊어버린 감각들, 그러니까 계절을 맞이하고, 계절을 만끽하는 방법들이 궁금해졌다. 김신지는 "나에게 봄은 이것으로 온다, 말할 수 있는 봄나물 하나쯤 품"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누가 뭐라 해도 (나의) 봄은 그날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착실하게 따라가다보면 '봄이 짧다'는 말이 주는 허탈함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해 봄이 짧아지는 건 사실이다.) 김신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봄은 산과 들에 꽃이 만발한 청명 무렵"에 제한되어 있다며 "이미 봄이 곁에 와 있는데도 봄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다채롭기 그지없는 봄은 결코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는 얘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한증막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지금, 한가롭게 '봄' 얘기를 하는 게 한가롭게 들릴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어떤 '제철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절기로 치면, 이 시기는 대서(大暑)이다. 열두 번째 절기이자 여름의 마지막 절기인데, 큰 더위라는 이름 그대로 무더위가 절정을 이르는 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요리

여름이 가장 미움을 받는 것도 아무 이 무렵일 것이다. 불볕더위와 습도는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들고, 다들 서늘한 계절을 그리워하며 여름이 싫다는 말을 무시로 내놓는다. (p. 174)


두 개의 고기압(북태평양고기압, 대륙 고기압)이 한반도에서 만나 하늘을 뒤덮은데다 제3호 태풍 개미까지 북상하면서 습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는 바람에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해 가중된 측면도 있다. 옛날이라고 덥지 않았던 건 아니리라.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던 시절이니 어쩌면 더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상들은 더위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김신지는 "이겨내려 하지 않았던 게 조상들의 지혜"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리지만, "여름은 여름답게 덥"다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며, 주어진 오늘의 날씨만큼을 살아내려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름이 이토록 더운 것은 우리에게 쉬어갈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는 법과 휴식의 자세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름이 가르쳐주는 휴식의 자세는 어떤 게 있을까. 김신지는 다산 정약용이 <소서팔사(消暑八事)>에 남긴 더위를 식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이런 식이다.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 타기, 넓은 정자에서 투호하기,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밤에 개울가에 밤 담그기.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는 '자연스럽게 살기'일 것이다.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말이다. 그건 정약용이 <소서팔사>에서 소개한 더위를 불 끄듯 없애는 방법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는 이를 오히려 더위를 즐기려 한 '낙서(樂暑)'라고 해석한다.

맹렬히 기승을 부리는 더위도 곧 끝날 것이다. 그리고 언제 더웠냐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푸른 잎사귀에 형형색색 물드는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 김신지는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해준다"며 매번 새로운 기회를 얻게 돼 다행이라 안도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절기를 놓친 채 살아왔다면 이제 새로고침할 좋은 기회이다.

무심히 스쳐가는 일상을 특별하고 의미있게 보내는 일은 어쩌면 절기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계절의 속도에 발맞춰 걸으며 눈앞의 행복을 찾아가고자 하는 당신에게 '제철 행복'이라는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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