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지금보다 훨씬 심심찮게 사용되던 시절에 '동음이의'를 활용해 말장난을 쳤던 기억이 있다. "에이, 사과가 심심해?"라는 식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 '심심'이 그 '심심'이냐?"며 면박 아닌 면박을 줬고, 서로 실없이 웃었다. '심심(甚深)하다'라는 단어의 뜻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하찮은 농담이었다.
물론 원래부터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해 국어사전의 도움이 필요했다. 언어의 확장은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세상의 모든 어휘를 다 알 수 없기에 모르는 단어와 마주할 때마다 배워서 습득하면 된다. 아마 동음이의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해 주춤했을 누군가도 나처럼 국어사전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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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심한 사과'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20일, 한 웹툰 작가가 열기로 한 사인회 예약 과정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자 주최 측인 카페에서 사과를 담은 공지문을 트위터에 게재했다. 공지문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예약 과정 중 불편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정중한 사과에는 별다른 하자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 진짜 XXX들 같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심심한 사과'하는 표현에 딴지를 걸었다. 이것 때문에 더 화가 난다며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냐며 댓글을 달았다. 이어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너희 대응이 재밌다"며 생각 있는 사람이 공지글을 올리도록 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심심(甚深)'이라는 한자어를 모르고, '할 일이 없어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뜻으로 새긴 탓이다.
이 상황을 포착한 일부 언론은 대한민국의 '실질적 문맹률'이 75%에 달한다는 OECD 조사를 언급하며, "기술이 발달할수록, 미디어로 정보를 접하거나 글을 읽는 게 익숙해질수록 실질 문맹률이 더욱 높아질"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일각에서는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각종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권도 논평에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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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4일 오상진 아나운서는 '뒤늦게 올려보는 문해력에 논란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글에서 조심스레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언어는 변화하기 마련"이고, "한국어는 참 어렵"다는 전제로 논지를 펼쳐나갔다. 결론은 '싸울 필요가 없다'였다. 어렵고 복잡한 한국어를 마스터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오상진 아나운서도 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오상진 아나운서가 생각하는 이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는 "지나친 자기 확신과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오만이 부딪혔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생각해보자. 고객을 상대하는 업체가 사과를 하는데 '조롱'이라는 수단을 쓸 까닭이 있을까. 설령 '심심한'이라는 말이 거슬렸을지라도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또, 누군가 '심심한 사과'라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고 해서 조롱할 필요도 없다는 게 오상진 아나운서의 생각이다. 그는 '학식을 갖춘 이들의 거드름과 무시가 사회의 갈등을 격화시켰다'는 마이클 샌델의 분석을 인용하며 "한 번 더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태도"를 요구했다. 오상진 아나운서는 자신의 의견을 '양비론'이라 말하며 민망한 듯 웃었지만, 이 정도의 의견이 가장 균형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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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와 같은 논란은 비일비재하게 나타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듣도보도 못한 생소한 어휘'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알아야 할 상식적인 어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충돌이다. 문제는 이 충돌이 소통의 여지를 차단하고, 조롱이나 비난처럼 소모적인 갈등으로 비화된다는 점이다. 얼마 전 '금일', '직조', '명징' 등의 단어가 도마 위에 올랐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흔히 언어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고 한다. 과거부터 언어는 계속 변화를 거듭했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기성 세대가 썼던 수많은 말들이 사라졌고, 오래된 책 속에 박제된 채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신세대가 만들어내는 신조어들로 채워진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재치있는 말들이 우리 삶에 들어온다. 우리는 이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또 적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심한 사과' 등 이른바 문맹률 논란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에 신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뢰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문맥을 이해하고 맥락을 살피기보다 어휘 자체에 몰두하고 집착하게 된다. 사과문에 조롱을 섞을 가능성이 없음에도 그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런 갈등은 오해를 낳고, 심지어 악의적 오독으로 이어진다.
한쪽은 문맹이라 조롱하고, 한쪽은 꼰대라고 비웃는다. 한쪽은 교육을 강화하라고 아우성이고, 한쪽은 당신들은 신조어를 아느냐고 따진다. 이 소모적 논란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오상진 아나운서가 말했듯, 모르면 알아가면 되고 모른다고 얕볼 필요는 없다. 양쪽 모두 조금 열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싸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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