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수능 세계지리 오류 인정, 다행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너의길을가라 2014. 10. 3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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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세계지리 8번과 관련해 해당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고통을 드리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모두 정답 처리할 것이며, 이에 따라 등급, 표준점수, 백분위를 재산출해 학생과 대학에 통보하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성훈 평가원장)


"평가원의 성적 재산정 결과에 따라 성적이 상승하는 학생 모두에게 재산정 성적으로 추가 합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겠다. 피해 학생들을 정원 외로 추가 합격시키기 위해서는 법령의 근거가 필요하다. 국회를 비롯한 관계 당국과 협력해 법령 제정을 추진하겠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결국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백기(白旗)를 들었다. 다소 늦었지만, 바람직한 투항(投降)이다. 31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성훈 평가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출제 오류'라는 지난 16일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상고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의 글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세계지리 8번의 문제는 오류가 분명(㉢이 명백히 틀리기 때문에 옳은 지문은 ㉠지문밖에 없으므로 정답이 없음)했기 때문에 교육당국이 상고를 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평가원이 이번 소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법무법인 광장'에 변호를 의뢰하는 비용으로 총 8,250만 원을 지출했는데, 이 돈이 수험생이 낸 수능 응시료와 세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결국 교육당국이 이러한 국민적 여론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1년간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이라도 합격한다면 당연히 기쁘죠."

"명예는 회복됐지만 상처받은 내 아이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나요."


교육당국의 상고 포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일단 기쁘지만, 향후 대책과 관련해 걱정을 토로한다. 교육당국이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모두 정답 처리하고, 이를 성적에 반영해 대학에 통보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은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 등급 재산정으로 인해 추가 합격자가 몇 명이나 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주요 대학을 상대로 일부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면서 "문항 오답자 1만8,884명 가운데 약 4,800명의 등급 상승이 추정되나 대학과 학과별로 수능 점수의 반영 기준과 비율 등이 모두 달라 합격자 수를 속단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명 입시교육 업체들은 "이번 구제안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학생 수가 최대 수백 명에 그칠 수 있다"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적인 영향이 적은 수시 전형의 경우에 탐구 영역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는 대학은 서울 소재 주요 대학 정도에 불과하며, 정시의 경우에는 '불합격자'만 구제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시에서 하향 지원해서 다른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아예 원서 접수를 하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구제를 받기가 어렵다.


설령 이러한 케이스까지 받아들여 구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학에서 1학년을 다닌 학생들을 신입생으로 입학시킬지 편입을 통해 2학년으로 받아들일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들의 입장에서 굳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사실 대학에 탈락자의 추가 합격 등을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며, 가능한 것은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것뿐이다.



ⓒ 세계일보


황우여 장관이 국회 입법을 통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국회에서도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구제를 받은 학생들이 2015년 3월까지는 입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2015년 2월까지는 특별법 제정이 완료되어야만 한다. 신속한 법안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공이 국회로 넘어갔다고 해서 교육당국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출제 오류로 인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수능 한 문제'로 인생이 바뀌어버리는 왜곡된 대입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 또, 교육당국이 당장해야 할 일은 출제오류 제기가 있을 때마다 열리는 형식적인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외부에 개방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구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명백한 출제 오류에 대해서도 묵묵부담으로 일관하며, 1년 가까이나 되는 긴 기간동안 수많은 학생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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