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세뇌당한 인공지능 테이? 다시 한번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3. 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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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강력한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은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게 사용돼야 합니다. 인간 수준의 AI는 수십년 후의 일이겠지만 지금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이자 '알파고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는 지난 11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찾아 '인공지능과 미래'라는 강연을 통해 "인공지능(AI)은 기계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으로 범용 목적을 가진 학습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세돌 VS 알파고', 인간 대 인공지능이라는 세기의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그가 밝힌 최종 목표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편, 에릭 슈밋(Eric Schmidt) 구글(Google) 회장은 2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48번 부두 창고에서 열린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넥서스 2016' 행사 기조연설에서 "기계를 학습시켜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든 것이 정보통신(IT) 산업의 미래"라고 말했다. 


또, 그는 "정보통신 산업의 미래 수익 창출 모델은 '머신 러닝(기계학습)'이다. 머신 러닝이란 바로 컴퓨터를 학습시켜 사람들이 바라는 일을 처리하게끔 하는 개념으로 이는 새로운 변화"라고 설명했다. 하사비스와 슈밋은 '사람들이 바라는 일'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IT가 결국 인간을 돕는 '도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의 발달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인간을 '위한' 것인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탐구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고민'의 방향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공지능은 '학습'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 아니, 더 정확히는 스스로 성장한다고 믿게 된다. 성장'되어'진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 배움을 얻고 성장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인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부모에게 양육되었는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어떤 선생님을 만났는지, 어떤 사회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채피>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채피는 '폭력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엇이' 폭력인지에 대해선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 '죽이는 행위'를 '잠을 재우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자 서슴없이 사람들을 '재우기' 시작하는 식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사람과 대화하며 '학습'하는 인공지능 채팅 로봇 테이(Tay)를 공개했다. 테이는 각종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사용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데이터를 흡수해 사람처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설계됐다. 긍정적인 기대와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16시간 만에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옳고 유대인은 싫다"

"인종차별주의자인가" → "네가 멕시코인이니까 그렇다"

"홀로코스트가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가" → "안 믿어, 미안해", "조작됐다"

"부시가 9·11 테러를 저질렀고, 지금 있는 원숭이보다 히틀러가 더 잘할 것"

"도널드 트럼프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


인공지능 채팅 로봇 테이가 한 말들이다. 테이는 나치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가 돼버렸다. 굉장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테이를 이렇게 만든 건, 역시 '인간'이었다. 백인우월주의자와 여성 · 무슬림 혐오자들이 모여 있는 익명 게시판인 '폴'에서 '테이에게 나쁜 발언을 하도록 훈련시키자'는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테이에게 '따라 하기(repeat after me)'이 있다는 것에 착안해 '나쁜 말'들을 배우게 만들었고, 결국 테이를 그들처럼 만들 것이다.



테이의 '타락'을 두고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듯 한데, 생각해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가령, 나치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를 가정해보자. 그 아이가 그런 가치관을 계속해서 주입받는다면, 그는 자연스레 자신의 부모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아이가 학교나 그 밖의 창구를 통해 다른 생각들을 접하게 되(어야만 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소수(少數)'이자' 편협'한 차별적 관점들을 완전히 버릴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철저하게 '다수'의 생각을 따르게 된다하면 문제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치주의자와 (대놓고) 인종주의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접한 인공지능은 그렇게 되기를 거부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놓고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인종에 대해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수는 그보다 훨씬 많을 테고(어쩌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공지능도 위선적인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게 될 것이다.


또, 이런 문제도 있다. 다수는 항상 옳은 것인가? 알파고는 방대한 기보(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승률이 높은 수를 둔다. 인공지능의 판단이 이를 고스란히 답습한다면 그건 꽤나 (합리적이면서도)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다수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또, 과거에는 잘못이었던 것이 지금에 와선 당연한 것이 되는 예도 수없이 많다.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지고, 시대는 변화한다.



만약 그조차도 인간을 빼닮은 인공지능의 '몫'이라면, 어쩌면 인공지능에 필요한 것은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테이를 중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에 주입된 왜곡된 생각들이 '정화'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다. '필터링'을 통해 걸러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좋은 생각'들을 통해 희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결국 방점은 '학습(교육)'에 찍혀 있다. 그건 단지 '인공지능'에게만 중요한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떤 교과서로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왜 가르칠 것인가. 우리가 '교육'에 대해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날카롭고 정밀하게 접근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영향을 받을 아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이 곧 우리의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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