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설득력 있는 엑소시즘 영화, <검은 사제들>의 성공 포인트는?

너의길을가라 2015. 11. 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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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미심쩍었다. 한국판 '엑소시스트'? '엑소시즘(exorcism)', 그러니까 구마(驅魔)를 다룬 영화가 어김없이 매년 개봉하긴 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장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피하는 장르에 가까웠다. 1973년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The Exorcist)> 이래 나름대로의 발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식상해진 것이 사실 아닌가? 



무엇보다 '공포'와 결합한다는 뻔한 구성이 지루했다. 가뜩이나 이런 의구심으로 가득한데, 충무로에서 엑스시즘을 다룬다? 이 영화가 좌초(坐礁)할 확률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엑소시즘' 자체를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기반은 굿이나 무당 등 민속신앙에 놓여 있었던 만큼 '가톨릭'적 요소를 가져온 것만큼은 색달랐다. 


그렇다고 모든 파격(破格)이 곧 신선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뒤집는 행위가 되려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고, 어색하게 느껴져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은 충무로에서 전무(前無)했던 도전에 성공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엑소시즘과 공포라는 전형적인 결합 방식을 버리고 '스릴러'를 취한 선택이 절묘했다. 



지난 4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강동원은 "그런데 이게 또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들었다"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공포스러운 소재를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 전개 방식이 좋더라.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스릴러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다. '공포'라는 틀에서 벗어나자 '이야기'가 들어갈 틈이 훨씬 넓어졌다. 그랬기 때문일까? 


<검은 사제들>은 기존의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들이 답습했던 우를 반복하지 않았다. 단순히 '퇴치'라는 행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영적인 능력을 지닌 사제가 악령을 퇴치한다는 기본적인 얼개는 같지만, 그 위에 김 신부(김윤석)와 부마자가 된 독실한 소녀 영신(박소담) 그리고 어린 동생을 잃은 최 부제(강동원)의 '휴머니즘'을 설득력 있게 풀어놓았다. 



이것이야말로 <검은 사제들>이 여타의 엑소시즘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또, '장미십자회'나 '12형상' 같은 낯선 용어들로부터 관객들의 집중력을 지키기 위해 이야기의 잔가지를 쳐내고, 오롯이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구마 예식을 행하는 사제와 그를 돕는 보조 사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흔들림 없이 이야기를 전개했던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역시 <검은 사제들>의 하이라이트는 40여 분에 달하는 구마 예식인데, 이 부분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충무로에서 시도해본 적이 없는 소재였던 만큼 엄청난 부담이 있었을 테지만, 장재현 감독은 서양 영화에서나 다뤄지던 구마 예식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구마 예식을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던 자신의 포부를 실현한 것이다.


소금을 뿌려 경계를 만들고, 성경책과 촛불 등으로 예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밀도 있게 그려졌고, 한국어, 영어, 라틴어 등의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 기도 장면이나 십자가나 성수 등의 디테일한 묘사도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게다가 '프란체스코의 종'이나 바흐의 음악 등 여러가지 시청각적 효과들은 관객들의 몰입도를 배가시킨다. 




어찌보면 집중력이 있지만 달리 보면 단조로운 이야기 구성에 생명력을 더하는 건 아무래도 배우들의 열연이 아닐까 싶다. 김윤석은 자칫 허공에 뜰 수 있는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한다. 엑소시즘이라는 판타지적 요소에 그만의 독특한 연기로 설득력을 주면서 무게 중심을 잡는다. 또, 최 부제 역할을 맡은 강동원은 흔들리고 불안에 가득찬 눈빛 연기와 다양한 표정을 통해 관객들이 이 낯선 이야기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외모에 가려져 저평가를 받곤 하는 강동원의 연기는 이번만큼은 훨씬 도드라졌다.


무엇보다 박소담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영화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던 그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충무로의 샛별로 자리매김했고, <검은 사제들>을 통해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던 소녀의 모습에서부터 피칠갑을 한 채 악령에 씌여 괴기스러운 모습까지 다층적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하도 칭찬해서 이제는 내가 헛소리 하는 사람 될까봐 칭찬을 아끼고 싶다"는 김윤석의 말은 과찬이 아니었다.



워낙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구마 예식 탓에 <검은 사제들>의 메시지는 다소 가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재현 감독은 '구마'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톨릭의 틀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 영화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평범한 여고생의 희생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마음을 다루는 작품으로 이해했다"는 김윤석의 말에서 힌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가톨릭 교회에서조차 '미친 사람' 취급 받는 한 사제와 개에게 어린 동생을 잃어야 했던 상처를 안고 사는 젊은 사제, 이와 같은 비주류들이 모여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고 영혼을 구하는 <검은 사제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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