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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라는 '부부의 세계' 박해준, 진화적으로 보면 어떨까?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20. 4. 17. 16:51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진실을 폭로하고 파국을 선언한 선우(김희애)에게 태오(박해준)는 오히려 당당했다. 그는 불륜을 사랑이라 변명했다.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대신 사랑에 빠진 자신의 행동은 죄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태오에게 사랑은 불가항력적으로 '빠지는' 사건이다. 주체적으로 '하거나', '나누는' 경험이 아닌 것이다. 태오의 저 말은 JTBC <부부의 세계>에서 가장 어이없는 대사 중 하나였다.

그래도 태오는 일관성은 있었다. 그는 친구인 명숙(채국희)과의 대화를 나누던 중 "미치겠는 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야"라며 선우와 다경(한소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걔(다경)랑 있으면 내가 살아있는 거 같아. 창작자로서 막 영감이 떠올라. 애틋하고 소중하지."와 같은 유치하고 촌스러운 대사를 내뱉기도 했다. 표정과 감정이 너무 진지해서 코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부부의 세계>는 철저히 선우의 시선을 따라간다. 2년 동안 몰래 불륜을 저지른 태오에 대한 복수, 그 응징이 이야기의 주된 골자다. 그래서 태오의 저 주장(!)들은 같잖은 말로 취급됐다. 불륜남의 추잡한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혼 후에 태오는 (구원자처럼 손을 내민) 다경과 가정을 꾸렸고, 영화 감독으로서 성공까지 거뒀다. 그리고 예쁜 아기와 함께 마침내 고산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그는 새로운 삶에 안착했다.


이쯤에서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태오의 말처럼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가능한 일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윤리적으로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려 들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폴리 아모리(다자간 비독점적 연애)'라는 형태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은 상대방을 독점하지 않은 채 다른 파트너들과 함께 사랑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한 부부가 다른 이성과 사랑에 빠지는 건 어떨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앞선 질문에서 놀랐던 것보다 더 기겁을 하겠지만, EBS 다큐프라임 <뇌로 보는 인간> 4부 '섹스' 편은 조금 다른 시선을 전해주고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윤리' 상으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겠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문제는 일부일처제와 관련이 있는데, <뇌로 보는 인간>은 일부일처제가 당연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UN의 인구통계를 기반으로 1947~2011년 사이의 이혼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결혼하고 4년에 이혼을 많이 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가 궁금했죠. 사랑에 빠져 부부가 된 뒤 아기를 낳고 유아가 되기까지 4년 정도 걸립니다. 아이들은 4~5세가 되면 또래 집단과 어울려 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부간의 협력이 줄어 유대가 약해지죠.”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UN의 인구통계를 근거로 결혼 후 4년이 부부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언급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기가 되면 (일반적으로) 아이가 유아기에 접어들게 되고, 유아가 된 아이가 또래 집단과 어울리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부간의 협력과 유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후 다시 유대 관계를 증진시킬 기제가 생긴다면 위기를 넘어서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혼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일부일처제는 당연한 것일까? 헬렌 피셔는 인간이 짝을 찾을 때 뇌의 세 가지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성욕, 두 번째는 로맨틱한 사랑, 세 번째는 상대에 대한 깊은 애착이다. 성욕은 파트너를 찾도록 하고, 로맨틱한 사랑은 한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깊은 애착은 파트너와 오랫동안 함께 있기를 바라게 한다. 이 세가지가 한 사람과 형성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헬렌 피션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뇌의 3가지 시스템 성욕, 사랑, 깊은 애착은 모두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깊은 애착을 가지면서도 다른 사랑에게 사랑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성욕을 느낄 수도 있죠. 한 사람에게 성욕, 사랑, 애착 3가지를 모두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좀더 과학적인 접근을 해보도록 하자.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 호르몬이라고 불리곤 한다. 파트너와의 유대를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쌍둥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바소프레신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양이 유전적으로 달랐다고 한다. 놀랍게도 바소프레신의 양이 적은 사람은 파트너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유전적으로만 볼 때 4명 중 1명은 일부일처제에 적합하지 않았다.


진화 생물학자 데이비드 버래쉬는 새들도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며 자연에서 남성 1명, 여성 1명인 일부일처제는 이례적인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따르게 된 건 (고작) 1만 년부터로 농경 문화가 가져온 변화라 덧붙였다. 인류가 정착을 하고 농경 생활을 하면서 재산을 소유하게 됐고, 이를 물려줄 필요가 생기자 친자 여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긴 인류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현상인 셈이다.

진화 생물학자 조앤 소우자는 성인 사망률(이 높으면 친부라는 확실성을 취하는 대신 양육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성인 사망률이 낮으면 그 반대이다.)이 일부일처 혹은 다수의 짝을 가지는 것을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몇몇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남녀가 동시에 여러 짝을 갖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고 설명하며 그 예로 브라질의 카넬라족, 파라과이의 야체족, 베네수엘라의 바리족, 중국의 모수오인(의 주혼) 등을 소개했다.

현재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부일처제는 1960~70년대 현대 의학이 대중화되면서 성인 사망 위험이 급감한 결과라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인간은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해 (일부일처제가 생존에 좀더 유리한)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는 것이다. <뇌로 보는 인간>의 이야기는 일부일처제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통념에 상당히 배치되는 흥미로운 과학적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부부는 뭐였을까? 함께 한 시간들은 뭐였으며, 서로를 그토록 잔인하게 몰아붙였던 건 뭐였을까? 사랑해서 미워해서? 결국은 인간이라서?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물론 태오의 저 가증스러운 변명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 건 위험한 일이다. 태오는 성숙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자체가 오염돼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논의도 2차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칫 태오를 옹호하는 뉘앙스로 들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허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불륜' 드라마를 통해 일부일처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적 증거는 분명 인간과 일부일처제가 꼭 맞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지만, 충돌하는 욕망을 조절하고 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 현재의 우리들은 일부일처제를 하나의 사회적 규칙으로 삼았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관계의 방식들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존중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태오의 문제는 명확하다. 관계(가정)에 대한 책임감 없는 태도이다. 그리고 비겁함이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건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진화적으로 일부일처제가 적응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관건은 합의일 것이다. 다른 형태의 관계를 지향한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가 머무를 수 있는 지점을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일부일처제를 당연하게 여겼던 선우로선 갑자기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태오의 주장은 청천벽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랑에 빠진 건 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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