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ラーメン)’보다는 ‘라면’을 좋아한다. 닭뼈나 돼지뼈로 육수를 낸 라멘은 느끼하다. 입이 짧은 탓이다. 그래서 라면도 무난한 걸 즐겨 먹는 편이다. 굉장히 유명한 브랜드의 것들만 찾는다. 기름기가 많거나 뭔가 번잡스러운 건 별로다. 굳이 다른 재료를 추가해 넣지도 않는다.
저마다 자신만의 라면 끓이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비법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기본기에 충실할 뿐이다. 곁들여 먹을 김치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 라면 회사의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신뢰하는 편이다. 라면에 대한 태도는 그런 정도다.
정말 오랜만에 라멘을 먹기로 했다. 합정 근처에서 라멘집을 찾다가 ‘세상끝의라멘(世界の果てのラーメン)’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상호(商號)들이 경박(경쾌라고 해도 좋다)스러움이 없었다. 세상의 끝에는 어떤 라멘이 있는 걸까.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합정역과 가까웠다. 2번 출구(2호선)로 나오면 상가들이 밀집한 도로가 나온다. 메세나폴리스(양화로7길) 쪽으로 걸어가다 두 번째 마주치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건물이 안쪽으로 파묻혀 있어 일본어로 된 간판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가게 안의 인테리어는 라멘집답다. 일본풍이다. 영업 시간이 22시까지라 이미 마감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라멘 주문이 가능하냐고 묻자, 딱 2그릇 분량이 남았단다. 다행이다 싶었다. ‘미소 파이탄’은 주문이 안 된다고 해 ‘첫 라멘’과 ‘끝 라멘’을 하나씩 주문했다. 수제교자도 하나 시켰다.
첫 라멘은 닭 육수와 해산물 육수를 섞어 만들었는데, 국물에 기름기가 적고 색도 맑은 편이다. 라멘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끝 라멘은 닭 육수에 간장타래를 섞었다. 오사카 다가이다풍의 블랙 라멘이다. 보기에도 국물이 진해 보인다. 초보자가 도전하긴 쉽지 않다.
첫 라멘
S(5,000원) R(7,000원), L(10,000원)로 단계를 나눠 놓았는데, S는 토핑에 하나도 없는 것이다. 면발과 육수에만 집중한다지만, S를 주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R는 수비드 목살 2조각, 닭가슴살 4조각과 멘마(죽순)가 추가된다. L은 목살이 2조각 더 늘고, 계란도 들어간다.
가장 중요한 건 맛일 텐데, 솔직히 라멘은 어떤 맛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평가를 해보자면, 첫 라멘은 국물의 느끼함이 적은 편이라 확실히 초보자에게도 부담이 없는 맛이었다. 닭 육수가 기반이라 국물이 맑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고기도 부드러워 식감이 좋았다.
끝라멘도 엄청 진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역시 닭 육수가 바탕이라 돼지 육수의 깊은 맛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국물이 깔끔하고 맑다. 간장을 써서 색은 검게 나타나지만(그래서 블랙 라멘이다), 생각만큼 진한 맛은 아니다. 담백하다는 표현이 좀더 적당할 것이다.
평소 느끼한 일본 라멘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끝의라멘(世界の果てのラーメン)’은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합정의 다른 라멘집은 돼지 육수의 기름기가 담뿍한 메뉴가 주를 이루기에 ‘세상끝의라멘’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보인다.
맛 : ★★★☆
친절도 : ★★★★
청결도 : ★★★★★
분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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