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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엄마'였던 배우 김수미, 감사했다는 마지막 인사를 바친다

너의길을가라 2024. 10. 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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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뉴스는 클릭하지 않고 제목 밖에서 한참 동안 멈춰 있게 된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다. 읽고 싶지 않다. 읽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 마치 내가 확인하지 않으면 벌어진 일이 아니게 되는 것만 같아 읽기를 주저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25일 아침 전해진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의 별세 소식이 그랬다. 뉴스를 클릭하기까지 많은 준비가 요구됐다. 그럼에도 아파 왔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었다. 향년 75세였다. 지난 5월과 7월 피로 누적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해 활동을 중단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있다. 복귀 후 홈쇼핑 방송에서 얼굴이 부어 있어 또 한 번 놀랐지만, "전날 밤을 새웠는데 급하게 촬영했"고 "말이 어눌한 건 임플란트 때문"이라는 아들 정명호 나팔꽃F&B 이사의 설명에 가슴을 쓸아내렸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부고가 전해져 황망하다. 가까운 선후배 지인들도 전혀 예상을 못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정지선 셰프는 5일 전에 인사를 드렸다고 하고, 며느리 서효림은 어제도 뵙고 왔다고 하는 걸 보면 느닷없는 이별이 맞는 듯하다. 경찰은 사인을 지병에 무게를 두고 있고, 가족 측은 뮤지컬 '친정엄마' 출연료 미지급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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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는 대중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또 다른 원로 배우 김혜자가 자애로운 엄마의 표상이라면, 김수미는 괄괄하지만 친근하고 정겨운 엄마였다. MBC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캐릭터로 대중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그는 유작인 뮤지컬 '친정엄마'의 제목처럼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는 엄마 그 자체였다. 때로 욕도 구수하게 하고, 싫은소리도 하지만 언제나 내 편인 존재 말이다.

인생의 대부분인 53년을 카메라 앞에 섰던 그는 천상 배우였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노인 분장을 하고 일용엄니 역할을 소화했다. 동기들은 멜로 드라마 주인공을 하는데, 자신에게는 노역을 주자 오기도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김수미는 일용엄니를 완벽히 소화하며 개성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갔고, 1986년 '남자의 계절'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김수미의 연기 인생에 있어 또 한번의 중요한 기점은 영화 '마파도(2005)'일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욕쟁이 할머니'라는 캐릭터를 장착하고 주연 배우로 우뚝섰다. 이후 영화, 드라마, 시트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안녕, 프란체스카(2005)'에서 선보인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코미디는 정극의 기본기가 바탕이 되었기에 더욱 각광받았다.

'요리'는 김수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매개이다. 요리 솜씨로 정평이 나있던 김수미는 예능 tvN '수미네 반찬'을 통해 또 한번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주방에서 요리하는 김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정확한 계량을 따르기보다 손끝 감각에 의존하는 그의 요리는 '엄마의 요리'를 떠오르게 했다. "후추는 조금 눈둥만둥 넣"으라는 레시피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17살에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요리를 했다는 김수미의 음식에는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살뜩히 챙기기로 유명한 실제 성격과 그가 만들어내는 요리는 너무도 잘 어울렸다. 이렇듯 김수미는 인심 넉넉한 엄마의 맛으로 대중의 마음을 위로했다. 너무 일찍 엄마를 여읜 그리움을 뼈저리게 알기에,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대중에게 넉넉한 엄마가 되어주고자 했던 것이리라.

비록 더 이상 김수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볼 수 없게 됐지만, 그가 남긴 레시피는 남았다. 그의 사랑과 따뜻함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것을 우리가 조금씩 나눠가질 수는 있으리라. 6년 전, 선행을 이어가는 김수미를 칭찬하고자 썼던 글의 말미에 그가 했던 말을 인용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부고에도 똑같이 그 구절을 옮겨 놓고자 한다.

"인생에는 너희같이 한창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끝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사는 날까지 큰 건 못해도 음식이든 뭐든, 나를 아는 사람이 내가 조금 거들어줘서 잘 할 수 있다면 계속 요렇게 하면서 살다 맺을 거야. 나는 정말 행복했어. 고마웠어. 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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