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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칼국숫집이 보여준 요식업의 현실, '골목식당'이 더 답답했던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9. 9. 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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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양념장에 내가 뭘 더 넣어서 맛을 변화시키면 안 돼요. 그건 10년, 20년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 양념장을 건드리는 거지.."

양념장을 계량화했다는 건 앞으로 언제든 일정한 맛을 구현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에 양념장을 넣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런 양념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을 리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양념장에 들어갈 여러 재료의 적정량을 계산하고, 완벽한 배합을 찾아내야 한다. 요리에도 진지한 연구와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다. 맛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도 계속해서 간을 본다? 그때그때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입맛에 따라 양념장을 추가하거나 육수를 들이붓는다? 결국 음식의 맛은 일관성을 잃고 사장님의 (순간의) 입맛에 따라 매번 달라졌다. 손님들은 들쭉날쭉한 맛과 맵기에 혼란을 느껴야 했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백종원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부천 대학로 편의 닭칼국숫집 사장님 이야기다. 이번 편에서 단연 '뜨거운 감자'였던 닭칼국숫집 사장님은 솔루션 마지막 날까지 시청자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는 양념장에 무언가를 더 넣어서 맛을 변화시키면 안 된다는 백종원의 당부를 어기고 제멋대로 맛을 바꿔버렸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우선, 요리에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상당히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닭칼국숫집 사장님은 요식업을 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요식업에 대한 이해가 사실상 전무했고, 가장 중요한 요리 실력도 평균 이하였다. 맛으로 손님을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조리법도 주먹구구식이었다. 만약 주방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돈내고 사 먹을 손님이 있을까 싶었다.

닭칼국숫집 사장님은 엄마가 하던 가게를 이어받았다. 척추와 무릎 수술을 받아 계속 장사를 하기 힘들어진 엄마의 대를 이은 것이다. 당시 엄마의 대답은 '안 된다'였다고 한다. 요리 실력이 없는 셋째 딸은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이 어려웠던 사장님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결국 닭칼국숫집은 넘겨 받았다. 결과는? 말해 무엇하랴.

닭칼국숫집 사장님이 양념장의 맛을 계속해서 건드렸던 두 번째 이유는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완성된 양념장으로 수없이 닭칼국수 조리를 되풀이 해봤다면 안정적인 데이터가 구축됐을 테고, 그렇다면 자신의 양념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실전에 나갔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내 연습량이 아니던가. 닭칼국숫집 사장님은 준비가 부족했다. 


재능이 없으면 연습이라도 철저히 해야 한다. 롱피자집 사장님은 피자에 대해 심도있는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여러 종류의) 피자를 준수하게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해진 레시피를 철저히 지키는 그 특유의 성실함이 백종원과 시청자들을 납득시켰다. 반면, 닭칼국숫집 사장님은 스스로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닭칼국숫집 사장님이 재능과 노력뿐만 아니라 요식업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백종원이 양념장을 계량화해야 한다고 설명했음에도 그래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양념장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거기에 끊임없이 변형을 가하며 맛을 엉키게 만들었던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백종원이 얼큰닭칼국수만 판매하는 것도 버거울 것이라 조언했지만, 사장님은 그저 해맑게 열심히 해보겠다는 대책없는 소리만 늘어 놓았다. 백종원이 두 가지 메뉴를 파는 걸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손님들이 밀어닥치게 되면 3개의 화구에서 2개의 메뉴를 동시에 조리하는 게 힘들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 장사가 시작되자 사장님은 벅찬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요리 실력도 부족한데다 이를 만회할 연습량도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의 사장님은 두 가지 메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그쯤은 시청자들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사장님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고, 결국 주방의 70%는 엄마의 몫이 됐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부천 대학로 편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 듯했다. 표면적으로 그리 보였다. 중화떡볶이집과 롱피자집도 저마다의 해법을 찾은 것처럼 보였고, 닭칼국숫집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백종원의 솔루션과 사장님들의 리액션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겉돌았다. 당연히 시너지 효과도 나오지 않았다.

방송 내내 사실상 일방적인 가르침이 이어졌다. 기본조차 없는 닭칼국숫집 사장님과 겨우 기본만 갖춘 롱피자집 사장님, 이미 답이 나와있는 불맛으로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했던 중화떡볶이집 사장님은 프로그램의 재미를 반감시켰고 의미도 퇴색시켰다. 좀더 생산적인 논의가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니 백종원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부천 대학로 편이 특히 갑갑했던 까닭은 요식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요식업은 출발점이라기보다 막다른 길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또, 직업적 자부심을 갖고 손님들에게 양질의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최대한의 만족을 주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별다른 준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돼 버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기준 기업생명행정통계'에 따르면, 요식업의 경우 창업 후 5년 내 생존률이 18.9%에 불과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보여주는 '준비되지 않은 창업'이 상당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들이 앞으로도 반복될 거라는 점이다. 백종원의 노력은 감동스럽기까지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이 없는 요식업계의 상황은 여전히 암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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