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농민 백남기를 떠올리며 노무현을 그리워해선 안 된다

너의길을가라 2016. 10. 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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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아이와 어울리고, 놓고 온 휴대전화를 찾아 '직접' 헐레벌떡 뛰어가는 버락 오바마를 보면서 '우리에게도 저런 대통령이 있었다'고 추억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에겐, 각자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인간 노무현'을 그리워 할 자유가 있다. 물론 리더십이 실종되고, 그저 눈앞의 이익만 좇는 모리배(謀利輩)에 가까운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정치인 노무현'을 떠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울 수 있다. 하지만 '농민 백남기'를 떠올리며 '노무현'을 그리워한다는 건 불편하고 잔인한 일이다.



농민 백남기와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웠던 밤 <미디어오늘>


지난 2005년 11월 15일 농민대회(시위)에 참가했던 농민 전용철 · 홍덕표 씨가 사망했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두 사람의 사망 원인을 '경찰의 과잉진압'이라 명시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용철 씨는 기동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진행방향에 서 있다가 떠밀려 넘어지는 과정에서 두부손상이 발생했고, 홍덕표 씨는 경찰의 방패에 뒷목 등을 가격 당해 경추 손상을 입었다. 그리하여 두 농민은 사망했다.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이었고,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었다.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른, 그럼에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 2015년 11월 14일로 시선을 옮겨보자. '1차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농민 백남기 씨는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고, 병상 위에서 317일 간의 사투를 벌였음에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지난 2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백남기 씨에게 '조준'된 물대포의 위력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이자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었다. 



- 2005년 12월 26일 저녁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전원회의 결과를 공개하면서 전용철, 홍덕표씨 사망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바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참모들의 의견이었나?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기는 어렵다. 경찰의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소관 부처가 있는데... 시민사회수석으로서도 진상을 숨기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엄정하게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 시점에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가지 않았다." 


- 그렇다면 대통령 자신의 생각이었나? 

"그렇다. (2005년 12월) 27일 아침에 대통령이 비서실장, 정책실장, 소관 수석인 나를 불러서 농민사망 사태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 참모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만류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고 각 부처에 직접적인 책임자들도 있었다. 경찰청도 있었고.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사과하는 것은 너무 나가시는 것이라는 신중론이 다수였다." 


- 만류에도 강행한 것인가? 

"당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지려면 따져볼 만한 내용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검토할 부분은 있지만 공권력 행사는 엄중한 문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건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마이뉴스>, "모두 말렸지만 노 대통령이 사과 강행"


물론 정부의, 아니 정확히는, '대통령'의 '대응'은 달랐다. (위의 인터뷰 내용을 길게 인용한 까닭은, "그 땐 TV속 대통령의 사과가 당연한 건 줄 알았다."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당시에도 대통령의 사과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과를 선택했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며 입을 뗀 그는 공권력의 남용이 국민에게 매우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외면'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이 지난 시점까지도 담당자에 대한 문책도 없었고, 당연히 사과도 없었다. 끝내 백남기 씨가 사망했음에도 그 어떤 '발언'조차 없었다. 지난 24일 시정연설을 위해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박 대통령은 '#나와라_최순실', '백남기 농민 부검 대신 사과!'라는 피켓을 든 김종훈 의원을 스쳐지나갔다.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개헌'으로 돌파하고자 애쓰는 그에게 '농민 백남기'가 눈에 보이기나 했겠는가.



확연한 차이다. 이 점에 착안해 두 정부를 비교하고, 더 나아가 대통령의 '품격'을 비교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어느 쪽이 더 진솔했고, 어느 쪽이 더 성숙했는지에 대해 굳이 코멘트를 달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하지만, 그 슬프고 고독했을 죽음 앞에 '누군가가 그립다'고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다. 또, 무례하다. 2005년에도 농민은 암담한 현실에 떠밀려 자신의 논밭을 떠나 시위 현장에 나서야 했고, 그건 201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농민이 죽어야 했고,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정파적 시각'에만 매물돼 누군가를 추앙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 매물되는 건 처량한 일이다. 그리고 매우 이기적인 생각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 전직 의경은 2005년 당시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양심고백했다. 그 명령의 최종책임자가 누구인지,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되리라 판단된다. 그리움에도 정도가 있다. '여론'이야 그렇다쳐도, '언론'까지 나서서, '그 때가 그립다'고 호들갑을 떠는 건, 감히 말하건대, 농민 백남기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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