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뜨거워진 '장자연 사건', '여성단체는 무엇을 했냐'고 조롱하는 이들에게

너의길을가라 2019. 3. 10. 20:27
반응형



"환한 햇살처럼 밝게 웃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던 자연 언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언니와 함께할게. 언니를 지켜나가 볼게. 이제는 하늘에서 밝게 빛나며 평안히 지내. 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 윤지오 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ohmabella)에 게시한 글 -


상황을 반전시킬 극적인 등장일까?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배우 윤지오 씨가 '등장'했다. 그의 '고백'과 '증언'들이 쏟아지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타오르고 있다. 지난 5일 고(故) 장자연 씨의 소속사 동료였던 윤 씨는 '증언'을 하기 위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그는 참담한 심경과 함께 '장자연 사건'과 관련한 유의미한 의문들을 제기했다. 


캐나다에 거주 중인 윤 씨는 지난 10년 동안 이름과 얼굴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자연인으로서의 삶도 유지할 수 없었기에 캐나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윤 씨는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갖고 사는 현실이 한탄스러웠기 때문에 이젠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에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방송에서 언급한 윤 씨의 주장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가 소각되기 전, "딱 한 차례 봤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는 이름도 물론 있고 아닌 이름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언론사의 동일한 성(姓)을 가진 세 명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 조사를 받는 중에 그 특정 언론사의 차량으로부터 노골적인 미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 고(故) 장자연 씨가 작성한 문건(장자연 리스트)이 '유서'의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살고자 하기 위해, 소속사 사장과 싸우기 위한 의도로 작성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을 했는데, "주민등록번호와 사인. 누가 유서를 그렇게 쓰는 유서를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게 그의 해석이었다. 그동안의 관점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라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고(故) 장자연 씨의 억울한 죽음,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남자들(의 정체)'을 밝혀내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3월 말 발표가 예정돼 있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재수사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되길 기대한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고(故) 장자연 씨와 관련한 기사에는 늘 이런 내용의 댓글들이 껌딱지처럼 달라붙는다. 


"여성단체들은 지금 뭐하고 있나요?"


이 비아냥 섞인 물음은 여성단체들이 고(故) 장자연 씨 사건에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라 쓰고 억지라 읽으면 된다)이다. 이런 정체불명의 댓글들은 과연 팩트에 입각한 것일까? 물론 사실관계가 완전히 틀렸다. 실제로 여성 단체들은 고(故) 장자연 씨 사건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싸워왔다. 인터넷을 뒤져 기사를 조금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여성단체, "故 장자연 사건, 끝까지 밝혀내라" 수사 촉구..경찰서앞 기자회견, <마이데일리>, 2009. 3. 18.

여성단체 "故 장자연 사건 특검 도입해야" <연합뉴스>, 2011. 3. 16.

여성단체 "검찰, '장자연 사건' 철저한 재수사" 촉구 <오마이뉴스>, 2018. 1. 23.

장자연 사망 10주기, 아직도 수사는 ‘현재진행형’ <여성신문>, 2019. 3. 7.


2009년 사건 당시, '진상을 끝까지 밝혀내라'며 앞장 섰던 건 다름 아니라 여성단체였다. 2011년 경찰이 재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특검을 도입하라'고 들고 일어섰던 것도 여성단체(한국여성민우회 등 40개 단체)였다. 2018년 장자연 사건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선 한국여성단체연합(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6개 단체) 등이 참여했다. 


이렇듯 여성단체들은 저 어이없는 댓글을 쓴 이들이 부재했을 그 자리를 10년 동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했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성단체의 역할과 노력을 악의적으로 외면하는 댓글에 수 천개의 '좋아요'가 눌린다는 건 정말이지 경악스러운 일이다. 


이들이 목적하는 건 무엇일까? '정의' 혹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일까? 아닌 것 같다. 저들은 단지 여성단체에 대한 폄하와 조롱을 원할 뿐이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그토록 간절히 밝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자신의 칼을 엉뚱한 여성단체에게 겨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결국 '신변 불안' 윤지오..여가부, 여성단체는 뭘 하고 있는가(텐아시아)라는 기사가 버젓이 등장하는 데까지 흘러가버렸다. 보고싶은 것만 쳐다 본 결과다. 



"안희정 불륜 사건엔 그 난리를 치더니만.."


'여성 단체는 뭐하고 있냐?'는 댓글과 늘 함께 붙어다니는 문장이 있는데, 그건 여성단체가 장자연 사건과는 달리 '안희정 불륜 사건'에 적극적이란 빈정거림이다. 이쯤에서 저들의 정체와 한계가 명확해진다. '장자연 사건'은 명백한 권력형 성범죄다. 마찬가지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도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이다. 그런데 저들의 인식 속에는 안희정의 범죄는 '불륜'일 뿐이다 '남자의 여자 문제', 즉 윤리적인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저들은 (안타깝게도) 권력형 성범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장자연의 죽음'을 떠들고 있는 셈이다. 위력으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빼앗은 대표적인 사례이자 인물인 안희정을 변호하면서 어떻게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가 저지른 권력형 성범죄를 지적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모순과 아이러니를 저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 걸까? 그건 아마도 제 입맛에 맞게 뒤죽박죽으로 조리된 '정의감'일 것이다. 


그 빈 깡통 같은 정의감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저들은 오늘도 그저 '여성단체는 뭘 하고 있냐?'라고 외칠 뿐이다. 싸울 상대마저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설득이 먹히지 않을 저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하나뿐이다. 남이 무엇을 했는지 묻기 전에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라.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면, 그저 침묵하고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하지 않는가.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고 간 남자들(의 권력)도 그대로이고, 장자연의 이름을 말하는 이들(의 성 인식)도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장자연 사건'이 10년째 제자리 걸음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