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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정준영 게이트의 진짜 '실체'는 무엇일까?

너의길을가라 2019. 3. 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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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닫혀 있던 문들 가운데 하나가 끝내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 있던 '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문의 이름을 '승리 게이트'라 부르기로 하자. 출발점은 강남의 한 클럽, 버닝썬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야밤에 술에 취한 남자들(클럽 직원과 손님) 간에 흔히 벌어지는 대수롭지 않은 싸움으로 여겼다. 그러나 경찰의 대응과 후속 조치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다. 


경찰과 강남 내 클럽들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고, 이후 버닝썬과 관련한 여러가지 제보들이 잇따랐다. 이른바 물뽕(GHB)과 성폭행 의혹 등이 그것이었다. 또, 빅뱅의 멤버'였던' 승리(이승현)가 버닝썬의 이사직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이 갖는 무게감은 한층 묵직해졌다. 대중들은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8일 경찰은 승리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승리가 포함돼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의 '성접대'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호기롭게 경찰에 출석해 마약 검사(음성)를 통해 면죄부를 받고, 군 입대라는 도피를 시도했던 승리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고, 대뜸 연예계 은퇴 선언을 해버렸다. 승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11일 <SBS 8뉴스>는 가수 정준영이 문제의 그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자신이 촬영한 불법 촬영 동영상을 유포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확인된 피해자만 1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정준영은 승리와 함께 있던 대화방 외에 다른 지인과의 대화방에서도 이 같은 불법 촬영 동영상과 사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2일 경찰은 정준영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렇듯 간략히 정리하기에도 벅차다. 아직까지 밝혀질 게 더 많은 사건이기도 하다. 버닝썬의 폭행 사건이 승리를 거쳐 정준영까지 왔다. 물론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참담한 심정이다. 그럴듯한 이미지('승츠비', '악동')로 자신을 위장한 연예인들의 몰락 때문(만)은 아니다. '승리 게이트'를 대하는 언론 및 대중들의 시선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것이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승리/정준영을 '미꾸라지'에 비유하며, 그들이 연예계 이곳저곳에 '흙탕물'을 뛰기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 때문에 연예계 전체가 자신에게도 흙탕물이 튀기지 않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식이다. 이는 (본의 아니게) 승리/정준영 등과 연예계를 분리하는 이분법에 가깝다. 그들이 흙탕물을 튀기는 미꾸라지인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연예계라는 곳이 오물투성이라는 점을 간과한 반응이다. 오히려 그들을 '낳고', '기른' 곳이 연예계가 아니던가. 


또, 어떤 기사는 "지금 승리에게 필요한 건 은퇴 아닌 '미움받을 용기'" 라는 어처구니 없는 타이틀을 달아 놓아서 읽는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움받을 용기'가 어떤 의미에서 쓰였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최소한 범죄자에게 갖다붙일 표현이 아니라는 건 명백하지 않은가? 그가 받아야 할 건 '죗값'이지 미움이라는 감정이 아니며, 그에게 필요한 건 '용기'가 아니라 '반성과 참회'다. 


SBS 8시 뉴스


어떤 이들은 발화성이 큰 불법 촬영 동영상 건으로 다른 이슈를 '덮는다'며 아우성이다. 그들은 아마도 족벌 언론이나 재벌 기업들의 이름, 혹은 정치권의 민감한 사안들을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주장은 깃털처럼 가볍다. 불법 촬영 동영상이 다른 이슈를 덮는다는 말에는 사건의 경중에 대한 그의 판단에 스며들어 있는데, 이는 사이버 성폭력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간과한 것이다. 그런 시각이 지금의 사태를 만든 것 아닐까? 


혹자들은 '버닝썬 게이트는 YG와 경찰, 검찰, 국세청이 어떻게 유착되어있는지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면서 '진짜 실세를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곁가지에 불과한 연예인들의 이름에 현혹돼 한눈 팔지 말고 '본질'을 향해 직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역시 '구조'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이 같은 일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진짜 실세'라는 표현에서 여전히 경중에 대한 섣부른 인식이 눈에 띤다. 


승리/정준영을 비롯한 (아직 드러나지 않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승리 게이트' 이전의 '버닝썬 게이트'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일까? 우리는 목격했다. 여전히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성접대(라는 언어가 존재하고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면서 낄낄대고 있었다. '남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데 목격하기 전에는 몰랐을까? 연예계든 문화계든 정치계든 그곳이 어디든 간에, 심지어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한 곳에서조차 여성들이 마치 '물건'처럼 소비되고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역시 '남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당장 <SBS 8시 뉴스>의 앵커는 "(정준영은)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고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여성의 기능화/도구화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뉴시스


승리/정준영에게 여성은 성적 유희의 대상일 뿐이었고,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객체였다. 이 왜곡된 성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들'이 특별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흙탕물을 튀기는 미꾸라지라고 생각한다면, 답을 찾기 위해 먼길을 에둘러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을 예외적 존재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들을 낳은 건 그들이 발딛고, 숨쉬며 살아왔던 이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도대체 그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성접대(성+접대)라는 비인간적인 언어를 만들어 냈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성을 아무렇지 않게 착취했고, 그것을 당연한 일인양, 불가피한 일인양, 묵인하고 심지어 장려해 왔던 사회이다. 그 접대를 받은 사람들은 대관절 누구이겠는가! 어떻게 이런 사고가 가능했을까? 무엇일까? 역시 여성을 객체화시키는 남성 중심 가부장제 문화의 영향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디스토피아의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해 왔다. 우리는 현장에 있었거나, 현장을 묵인했거나, 현장을 외면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경악했다. 누군가는 이분법을 들이대고, 누군가는 이슈가 덮인다고 소리치고, 누군가는 실체를 잡으라고 야단이다. 누군가는 나는 아니라니까 안심하라고 여유를 부리고, 누군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다들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뿐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열린 문과 쏟아지는 오물 틈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도대체 진짜 '실체'란 무엇일까? 승리/정준영과 관련자들, 반복된 성접대와 죄의식 없는 불법 촬영 영상물, 일련의 범죄들을 사실상 방조했던 경찰.. 이런 모든 것들을 성립가능케 했던 '실체'는 다름 아니라 여성의 성을 기능화/도구화하는 남성 중심 가부장제이다. 이것을 비판하지 않은 채 '너는 아니야? 응, 나는 아니야'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승리/정준영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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