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서재

15년지기 친구와 핀란드로 리유니언 여행 떠난 소설가(장류진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너의길을가라 2025. 3. 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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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일을 떠올리려면 기억의 페이지를 제법 넘겨야 하는 수고가 뒤따른다. 20대 시절에는 곧잘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와 여행을 떠난다는 건 왠지 어려운 일이 됐다. 아무래도 연애, 결혼 등이 이유일 것이다. 어느덧 각자의 삶이 단단히 자리잡히고, 일정 조율 등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친구와의 여행이라는 선택지는 더욱 희미해진다.

"나, 내년 여름에 혼자 한 열흘 정도 핀란드 다녀올까 생각 중인데.."
(...) "사실 내년에 첫째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서 육아휴직 안 쓰고 남겨둔 거 쓰려고 했거든. 어쩌면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의 저자 장류진의 제안에 선뜻 응한 이는 바로 그의 15년지기 친구 예진이다. 교환학생으로 떠난 핀란드 쿠오피오 대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그들은 그 이후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갔다. 한 명은 세 편의 소설을 쓴 소설가가 됐고, 한 명은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두 명이나 키우는 엄마가 됐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핀란드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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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리유니언 여행기'를 앞세우고 있지만,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이 책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우정 혹은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책이다. 곳곳에 자신과 똑닮아 있는 소중한 친구 예진과의 추억이 담겨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저자의 시선이 발견된다.

장류진은 <일의 기쁨과 슬픔>, <연수>, <달까지 가자>를 통해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고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별명에는 그의 문체에 대한 독자들의 애정이 담겨 있다. 그런 만큼 장류진의 에세이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첫 에세이이다보니 고민도 많았던 모양이다. 과연 그는 어떤 식으로 난관을 헤쳐나갔을까.

장류진은 "소설적인 방법으로 풀어보자고 생각했더니 글이 풀"렸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류진과 예진이라는 두 캐릭터에 집중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확실히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은 여행기를 담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소설처럼 읽힌다. 물론 친구와 15년 만에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핀란드로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소설적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여행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었던 예진이와의 여행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어 하고, 하기로 다짐했던 그 수많은 것들을 과연 다 하고 올 수 있을까? 우리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 (p. 47)

류진과 예진은 2008년 대학교 3학년 시절 교환학생으로 떠났던 핀란드 쿠오피오를 다시 찾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당시 함께 학교를 다녔던 친구 미꼬를 만나서 캠퍼스로 이동하고, 가난하던 학생들의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추억의 구내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는다. 다음 날에는 느긋하게 학교 호수인 사빌라흐티 호수를 원 없이 눈에 담으며 버킷리스트를 채워나간다.

다음 여행지는 저자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의 배경이 됐던 탐페레이다. 정작 탐페레 공항에 가본 적는 저자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까닭은 예진이 들려준 이야기 덕분이었다고 한다. 탐페레 공항에 도착한 저자는 "탐페레 공항을 쓴 내가 텅 빙 탐페레 공항에서 텅 빈 탐페레 공항을 읽다니"라며 감격한다. '탐페레 공항'이 수록된 책을 굳이 캐리어에 넣어 가져온 예진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행은 계속 이어져 두 사람은 헬싱키로 향한다. 책은 여행기라는 외피답게 헬싱키에서 최선의 숙소를 잡는 법이나 관광지 등에 대한 소개들이 담겨 있다. 또, 핀란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설명들이 눈길을 끈다. 가령, '만인의 권리' 같은 관습법이라든지 스몰 토크를 하지 않는 핀란드인의 성향, 핀란드를 대표하는 사우나 문화에 대한 묘사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물론 이 책이 더욱 값진 까닭은 '친구'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오랜 친구는 마치 기억의 외장하드 같다. 분명 내게 일어났던 일이지만 자주 꺼내지 않아 그곳에 있었는지도 잊은 일들을 친구의 입에서 들을 때, 애인지 부끄러우면서도 든든하다."는 대목을 통해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또, 저자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삶에 있어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들을 자세하고 신중하게 풀어놓는다. "'나는 어떤 칭찬을 받았을 때 가장 만족스럽고 편안한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대목은 우리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남긴다. 이 부분 역시 예진과의 대화를 통해 저자가 상기한 것이다.

혹자는 "살아보니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더라고. 다 쓸데없다고, 남는 건 가족바껭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친구란 "내 뒷배, 내 비빌 언던, 내 마음의 포근한 소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을 읽고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각자만의 리유니언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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