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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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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남다른 관찰 예능, <효리네 민박>이라는 희한한 별종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8. 3. 6. 00:35



"카메라가 더 많아진 거 같은데?" 효리는 집안에 숨겨진 카메라의 수를 세어 보다가 이내 포기해야 했다. 그럴 만도 하다. 고도화된 관찰 예능은 수많은 카메라를 곳곳에 배치하고, 대상자를 24시간 내내 들여다 본다. 카메라는 더 많을수록 좋고, 사각지대는 없을수록 좋다. 그리하여 일거수 일투족이 노출된다. 잠든 모습은 물론 잠버릇과 잠꼬대까지 카메라에 담긴다. 잠에서 막 깨어나 눈곱이 낀 부스스한 모습까지도 말이다. 


그러니까 관찰 예능은 '‘보여줄 수 있는 데까지' 보여준다. 그 한계는 '대중들이 원하는 데까지' 점차 확장된다. 이렇듯 관찰 예능은 본질적으로 관음적이다. 들여다 보고,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훔쳐 본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대중의 수요가 있는 모든 사람)의 집, 연예인의 민낯,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염탐한다. 긍정적인 언어로는 공감과 치유, 부정적인 언어로는 그저 관음증에 지나지 않는다. 


한때 관찰 예능에 대한 수요가 사그라드는 듯 했지만, 관찰 예능은 자기 혁신 혹은 끝없는 변주를 통해 자생력을 키워 왔다. 그리하여 중장년층은 SBS <미운 우리 새끼>를 보며 주말 밤을 보내고, 젊은 세대는 <나혼자 산다>에 열광한다. 안심하긴 이르다. 변덕스러운 대중들은 매번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래서 지금의 관찰 예능이 외치는 모토는 '더 독하게, 더 자극적이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대열에서 과감하게 이탈한, 기존의 흐름에서 용기있게 벗어난 별종이 있다. 바로 JTBC <효리네 민박2>이다. 관찰 예능의 범주에 속해 있지만, 관음성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는 점에서 <효리네 민박>은 분명 독특하다. 제작진의 개입이 그 어떤 관찰 예능보다 적다. 흐름을 끊는 인터뷰도 없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패널들의 훈수도 없다. 어쩌면 관찰 예능이라는 본질에 가장 출실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3회 방송에서 손성제의 ‘goodbye’를 듣던 윤아가 눈물을 흘렸을 때, 그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효리는 물론이고, 제작진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그보다 좋은 소스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제작진은 “제작진은 (출연자의) 감정을 자극적으로 가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기본 베이스였다. 상황 그대로의 감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전달해드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지난 4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자매(연주·연선)는 정든 민박집을 떠나면서 효리와 상순, 윤아에게 손편지를 남겼다. 가만히 편지를 읽어 나가던 효리는 금세 눈물을 뚝뚝 흘렸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거실의 소파에서 편지를 읽던 윤아도 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물론 우리는 그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편지 봉투에 함께 들어있던 사진 한장을 통해 그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할 순 있다.



그 사진은 연선의 오빠까지 삼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연선은 효리에게 자신에게 오빠가 있다면서 그가 다운증후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놓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빠를 보면 모른 척 했었다며, 돌이켜 보면 늘 마음이 좋지 않다고 고백했다. 자신은 오빠에게 해준 게 없는데, 오빠는 "어떤 걸 해도 그냥 사랑해주고 이해해"줬다며 변함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다고 미안해 했다. 


연선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효리는 "너도 준 게 많이 있네. 그렇게 늘 같이 있어 주고, 자기 말을 알아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최고냐?"라며 연선을 다독였다. 오빠의 말을 알아듣고 통역사 역할을 해 준 연선이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을 준 것이라고 위로한 것이다. 연선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며 효리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효리네 민박>은 이 장면조차 별다른 꾸밈 없이 그저 툭 던지듯 방송에 내보냈다. 



쾌활한 성격의 연자매는 민박집의 다른 손님들까지 살뜰히 챙기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편지로 효리를 비롯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셨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은 앞서 그랬던 것처럼 상황 그대로의 감성을 훼손하지 않았다. 기존의 관찰 예능이었다면 어땠을까. 감동을 뽑아내기 위해 어떤 패턴을 따랐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효리네 민박>은 '더 독하게, 자극적이게'에서 몇 걸음 물러서 있다. 아니, 결 자체가 다르다. 일정한 선을 지킬 줄 안다. 관찰하지만 발가벗기지 않는다. 관찰 예능의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효리네 민박>이 남다를 수 있는 이유, 그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 민박집의 회장님인 이효리의 역량이다. 효리라고 하는 예외적인(하지만 성숙한) 캐릭터가 프로그램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감동을 의도하지 않는 <효리네 민박>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선물 받고 있다. 앞으로도 관찰 예능의 시대는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자극을 향한 뜀박질을 계속할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다른 관찰 예능들도 <효리네 민박>을 보고 배워보면 어떨까. 인간에 대한 예의랄까, 사람에 대한 배려랄까. 사적인 영역에 대해 약간의 물러섬이야 말로 시청자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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