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인터넷 선 끊는 수리 기사? 과도한 실적주의의 부작용

너의길을가라 2015. 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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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왜 이렇게 적어!"


실적(實績)에 대한 압박. 정말 피 말리는 일이다. 실적을 가지고 팀(부서)을 평가하고, 개인을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줄 세우는 시스템은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도 뿌리내리고 있다. '실적주의(實績主義)'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우선, 장점부터 시작해보자. 흔히 기회의 균등과 전문성 및 투명성이 거론된다. '실적'이라는 객관적 지표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 외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A와 B를 가르는 기준이 오로지 '실적'이라는 점은 공평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단점 혹은 폐해도 만만치 않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실적에 대한 압박이 결국 사람의 피를 말리게 된다. 승진을 비롯한 인사고과(人事考課), 각종 인센티브가 실적으로 판가름나다보니 결국 본말이 전도되어 사람이 실적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팀이라는 개념과 협동이라는 가치는 사라지고, 나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은 경쟁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실적을 채우기 위해 다소 부적절한 행위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불법한 짓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에서 일어난 사건일 것이다. <KBS>의 취재에 따르면, '고객의 인터넷 선을 보호해 줘야 할 (SK브로드밴드의 협력업체) 수리 기사들이, 일부러 고객 집의 인터넷 선을 끊어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명백히 인정되는) 그 행위의 위법성을 떠나서, 협력업체 수리 기사들이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아하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도대체 왜 그럴까? 이처럼 위법하고, 비상식적인 행위의 배경에는 '실적'이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SK브로드밴드는 BS(사전 점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협력업체 수리 직원들은 본사에서 평가하는 서비스 실적을 채워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말해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인다고 한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비상식의 출발은 SK브로드밴드였던 셈이다.


- <KBS>가 입수한 SK 브로드밴드 한 협력업체의 단체 채팅방 캡처 사진 -


실적을 못 맞출 경우에 한 달에 차감되는 금액이 적게는 10~20만 원이고 많게는 50~6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BS를 원하는 고객이 없을 때는 고의로 고장을 내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하게 된 것이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이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을까? '실적을 강요하진 않았지만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대답이었다고 한다.


뻔한, 무의미한 이야기다. 아무런 '강요'도 없었는데, 직원들이 일부러 고객의 인터넷 선까지 끊으면서까지 실적을 쌓으려고 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4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를 차지한 SK브로드밴드의 민낯이다. 그 찬란히 빛나는 4년 연속 1위라는 타이틀은 협력업체 직원들의 고혈(膏血)로 쌓은 핏빛 금자탑이었다.


공농성을 바라보는 시선, 혹시 우리가 외눈박이는 아닐까? 라는 글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현재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케이블 설치 기사들로 구성된 희망연대노동조합은 SK 측에 "고용안정 보장, 재하도급 철폐,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장연의(42)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과 강세웅(46)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서광주지회 조직부장은 전광판 위에 밧줄을 메고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비단 SK브로드밴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도 실적을 통한 갈굼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적주의' 자체를 깡끄리 갈아엎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적을 통한 적당한 경쟁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득(得)'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과도한' 실적주의이다.


지나치게 실적을 강조하고, 압박을 가할 경우에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까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이번 사례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과도한 실적주의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바로 '사람'이 빠진 천민자본주의 아니겠는가? 우리는 '자본'보다 상위의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 속에 되새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적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본말전도는 어김없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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