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에게선 '사람 냄새'가 난다. 또, 그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한마디로 '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식상한 표현이지만, 유해진에겐 그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tvN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수더분하고 인간적인 모습 때문일까?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이 도움이 된 건 분명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인 것만 같진 않다. 이미 대중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성실히 쌓아왔던 진정성 가득한 필모그래피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배우 유해진, 인간 유해진의 매력에 대해서 말이다.
"복 받았지.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아요. 도움을 준다고 해야 하나? 고맙고 감사하죠." <일간스포츠>, 유해진 "인생은 파도타기..입방정 떨지 않을것"
6,975,295명. 그가 '첫' 주연을 맡았던 <럭키>가 거둔 흥행 기록이다. '손익분기점(180만 명)만 넘기면 좋겠다'던 소박한 목표를 가볍게 뛰어넘은 대성공이었다. 사실 큰 기대가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뻔한 코미디'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뻔함'이 '유해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고 나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그에게는 '진부함'마저도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고. 유해진은 '사람들이 날 밀어 주려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느낌'이 유효한 듯 하다.
'쌍끌이 흥행'. 현재 박스오피스 상황을 설명하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지난 18일, 같은 날 개봉한 <더 킹>과 <공조>는 각각 185만 2,944명과 115만 4,011명을 동원하며 '공생(共生)'의 길을 걷고 있다. '시국'에 절묘히 부합하는 데다 정우성 · 조인성을 앞세운 <더 킹>을 앞지르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설 연휴에 가장 어울리는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은 <공조>의 앞날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유해진'이라는 대중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배우가 있지 않은가.
▲ 공조(共助) :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서로 함께 도움
'재료'만 놓고 보면 <공조>는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남북 공조 수사'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페쇄하는 등 남북의 교류와 협력이 사실상 문을 닫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형사들이 팀을 이뤄 '수사'를 펼친다는 설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한 형사 임청령 역을 맡은 현빈이 소화하는 짜릿한 액션과 남한 형사 강진태 역을 맡은 유해진의 코미디 연기도 감상 포인트다. 거기에 JK필름(윤제균) 특유의 따뜻한 가족애까지, 또 하나의 '선물 세트'의 탄생이라 일컬을 만 하다.
그런데, 이 재료들을 몽땅 한 솥에 넣고 주구장창 끓이니 평범한 '부대찌개'가 돼 버렸다.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 재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특색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결국 영화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설득력을 부여하고, 그리하여 관객들을 이해시키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그런데 <공조>의 김성훈 감독은 차분히 관객들에게 다가가기보다 우격다짐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데 급급하다. 마치 '우리 영화 주인공이 무려 유해진과 현빈이야!'라고 말하는 듯 하다.
위폐 제작에 쓰이는 동판을 훔쳐간 북한 인민보안부 간부 차기성(김주혁)을 쫓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뿐만 아니라 차기성이 동판을 탈취한 동기와 목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돈'이라는 이유가 제시되지만, 그것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얼버무리긴 무리스럽다. 임청령과 강진태의 관계의 '급진전'도 다소 의아하다. 고작 3일의 시간만으로 '목숨'을 걸 만큼의 관계 형성이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다분히 '가족애'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여 불편하기도 하다. 끝내 '가족애'를 결말에 갖다 부치는 '과욕'이라니!
결국 <공조>를 이끌어 가는 힘은 당의 지시를 수행하는 동시에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공조 수사'에 투입된 림철령과 그런 림청령의 활동을 감시하고 막는 한편, 진짜 목적을 캐내야 하는 강진태가 보여주는 동상이몽, 그 애매한 콤비네이션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최대한 많은 '웃음'을 낚아채야 하는데, 영화는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그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예측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함마저 느껴진다.
분명 <공조>는 흥행 면에서는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건 '코미디'라는 장르가 명절 연휴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필연적 화학 현상과도 같은 것이다. 거기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의 호감도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날개'를 잔뜩 붙인 셈이다. 그런데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에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말이다. 이번에도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부실한 이야기와 뻔한 연출, '감동'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추구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유해진이라는 배우에게도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럭키>와 <공조> 두 작품에서 힘을 뺀 코미디 연기를 통해 주연 배우로 거듭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이제 다시 '긴장감' 넘치는 연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야 할 시기가 아닐까. 과거 <이끼>와 <부당거래>에서 보여줬던 강렬한 연기, 그 예측 불가능한 천의 얼굴을 다음 작품에선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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