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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던진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17. 11. 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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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믿고 보는 연출가의 반열에 오른 신원호 PD가 (이우정 작가와 함께) 차기작으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제목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감빵', 다시 말해 '감옥(구치소와 교도소)'을 배경으로 그곳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슬기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의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드라마의 정체가 무엇인지 의심의 눈초리가 자연스레 뒤따랐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1회와 2회는 '서부 구치소'를 배경으로 진행됐다. 3회부터는 장소를 옮겨 '서부 교도소'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구치소는 구속영장의 집행을 받은 미결수를 수용하는 시설이고, 교도소는 형이 확정된 수형자를 교정 · 교화하는 시설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괴한을 제압하던 중 트로피로 머리를 가격한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던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는 항소심에서 원심인 1년 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기존의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감되게 된다. 


구치소든 교도소든 간에 '감옥'이라고 하는 장소가 주는 불편함이 있는 게 사실이다. 미지의 영역이다보니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오는 찜찜함이 우선하기 마련이다. 감옥을 은어로 '학교'라 부르기도 하듯, '못된 짓'을 배워 나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적으로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다보면 범죄자를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더군다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자신만의 휴머니즘 세계를 펼쳐보였던 신원호 PD가 아니던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곳이 어디든 간에, 심지어 감옥이라 하더라도 '사람 사는 곳'은 매한가지라는 것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복합적인 뉘앙스가 녹아들어 있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빵'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똑같이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엄격한 규제와 감시 속에서도 '꼼수'가 횡행하고,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도 갈등과 다툼이 생긴다. 바깥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부대끼며 살아가게 됐으니 오죽하겠는가. 더 심하면 심했지 '감빵'이라 해서 다를 게 전혀 없었다.


덩치를 앞세워 구치소 내에서도 건달 짓을 하는 갈매기(이호철)만 봐도 '감빵'이라는 곳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감빵에서 아가 어딨고 어른이 어딨노. 여서는 다 똑같은 도둑놈들"이라며 감빵의 생리를 설명한다. 그런가하면, 사람 사는 곳 답게(?) 감빵에서도 '자본주의 논리'가 고스란히 적용된다. 영치금이 없는 영감(안창환)은 갈매기의 똘마니 역할을 하며 화장실 청소를 하고,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몸으로 때우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700억 사기를 쳤던 명 교수(정재성)은 유력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덕분에 구치소를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가 범죄자들에게서만 발생했던 건 아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관 조 주임(성동일)을 통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메시지의 또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조 주임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런만큼 '때'도 많이 묻은 이중적인 인물이다. 조 주임은 수감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등 불법적인 거래를 하고, 폭행 교사에 심지어 수감자의 가족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파렴치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감빵' 역시 '사람 사는 곳' 답게 온갖 비리와 적폐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렇듯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구치소라는 매우 이질적인 공간을 묘사하면서 그곳이 (바깥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차갑고 냉혹한 사회라는 점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신원호 PD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핵심적인 뉘앙스를 집어 넣었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인정(人情)이 존재하고 정의(正義)가 싹틀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김제혁은 인간미를 발휘해 법자(김성철)의 모친 수술을 돕기도 하고, 강간을 저지르고 구치소에 들어온 갈매기를 자신의 방식대로 심판한다. 또, 조 주임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도 결정적 기여를 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1, 2회만으로 드라마를 향해 쏟아졌던 염려를 불식시켰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그 안에 다양한 뉘앙스를 포함시켰다. 이 복잡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는 메시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숙제'를 던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신원호 PD는 '숙제'만 준비한 게 아니라 '재미'까지 듬뿍 담아냈는데, 그 중심에는 역시 김제혁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평소에는 굼뜨고 어눌하지만, 뛰어난 적응력과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주는 김제혁의 가볍지 않음은 오히려 든든한 위로가 된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빵'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시청자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하는 '휴머니즘' 드라마다. 각기 다른 시대를 담아내고 있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형이 확정되면서 교도소로 이감된 김제혁이 겪겨 될 파란만장한 감빵생활은 또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이 커진다. 1회 4.638%에 이어 2회에서 5.381%로 껑충 뛰어오른 시청률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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