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양우석이 열어젖힌 발칙한 논쟁 <강철비>, 곽도원이 마무리 지었다

너의길을가라 2017. 12. 23.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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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그 주체는 군부다. 쿠데타는 늘 그네들이 일으키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핵 미사일'을 보유만 하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전쟁에 사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입장에서 공화국을 위해 만든 핵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한 북한 1호(김정은 국방위원장)는 제거의 대상이다. 마침내 핵을 손에 넣은 군부는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킨다. 미국 등의 경제 제재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죽을 판이므로, 핵이라도 한번 쏴보고 죽자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더 고통 받는다." (곽철우)


한편, 북정찰국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는 쿠데타로 인해 부상을 입은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신한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엄철우로부터 정보를 얻어 국가 위기 상황에 긴밀히 대응한다. 남과 북의 두 철우가 힘을 합치는 이유도 간단하다. 그들에게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더 확장해 본다면, 결국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의 전부가 아닐까. 


그러나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군부 측은 암살요원 최명록(조우진)을 보내 북한 1호와 엄철우를 사살하고자 애를 쓴다. 한반도의 정세는 더욱 녹록치 않다. 북한 군부는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남한을 비롯한 주변국들엔 위기감이 감돈다. 당장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황은 더욱 복잡하기만 하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현직 대통령(김의성)은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을 원하고, 차기 대통령은 좀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자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강철비>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엄정한 현실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 그런 태도야말로 가장 허무맹랑한 행동이다." (양우석 감독)


혹자들은 실현 가능성을 들어 <강철비>를 깎아내린다. 애시당초 군부의 구데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양우석 감독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니 핵이나 쏘고 죽자'는 주장이 매우 극단적인 소수의 것이라 전제한다. 또, 북한의 핵이 '자위용'이라 못박는 쪽에서는 북한이 뻔한 공멸을 자초할 리 없다고 말한다. 결국 핵전쟁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란 것이다. 물론 타당한 이야기다. 우선, 북한에겐 중국이란 커다란 뒷배가 존재한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북한의 기득권은 유지된다. 그건 군부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들 분단(과 휴전)의 당사자인 우리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라고 뒷짐을 지고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를 통해 구현한 영화적 상상력은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며, 그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임에 틀림없다. 당장 2,497,872명(23일 기준)의 관객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남과 북의 적대적 긴장이 만들고 있는 근원적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철비>의 흥행 질주와 이 영화로부터 비롯된 여러 생상적 논쟁들은 일차적으로 <변호인>으로 데뷔한 양우석 감독의 공이다. 139분에 달하는 긴 영화지만, 결코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이야기에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철비>는 양 감독의 철저한 준비 끝에 나온 작품이다. 그는 2011년부터 연재된 웹툰 '스틸 레인(STEEL RAIN)의 스토리 작가로 참여했는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예측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 감독은 웹툰의 스토리를 구상하던 약 10년 전부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깊게 파고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강철비>가 그려낸 북한의 급변 사태와 제2 한국전쟁 직전의 상황을 허황되다 치부하지 않는 까닭은 그 고민의 진지함 때문일 것이다. 물론 양 감독의 해법, 북한의 핵무기 절반을 남한에 넘긴다는 발상은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그조차도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단계에 와서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주장인지 솔직히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를 통해 우리가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여러 선택지 중의 하나를 보여준 것이다. 


<강철비>의 성공에는 양우석 감독의 공 못지 않게 주연 배우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아수라>(2016)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동갑내기 배우 정우성과 곽도원이 이번에는 '동지'로 만났다. 북의 최정예 요원 역을 맡아 탁월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정우성은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 '밖'에서도 열일하고 있는 중이다. JTBC <뉴스룸>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자격으로 출연해 품격 있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KBS 파업을 지지하는 영상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그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시나리오를 덮고 난 다음, 이게 만약 영화화되어서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토론의 장이 이뤄질 거라 생각했다. 호기심이 강했다." (곽도원)


영화 속에서 엄철우가 돋보이는 건 당연하다. 또, 정우성의 연기도 발군이었다. 하지만 정우성은 워낙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니 이 글에선 덜 얘기해도 괜찮으리라. 비교적 덜 강조되고 있는 포인트, 바로 곽철우 역을 맡은 곽도원이야말도 이 영화의 히든 카드라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에 갖혀 있지 않은 곽철우는 사실상 양우석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양 감독은 자신의 한반도 정세 분석과 그에 대한 해법을 곽철우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한다.


또, 곽도원은 전반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는 영화 속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면서 웃음을 전달한다. 일종의 (영화의) 숨구멍이라 할 수 있는데,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뿐만 아니라 깜찍한 연기까지 넉넉하게 소화한다. SBS <유령>(2012)에서 소녀시대의 '트윙클'을 깜찍하게 불렀다면, 이번에는 G-DRAGON의 'Missing You'와 '삐딱하게'를 앙증맞게 불러낸다. 그러면서 고위 공직자의 포스까지 풍기는 다양한 매력을 선보인다. 전방위적인 활약이다.



곽도원의 연기는 변화무쌍하다. 또, 전형적이지 않다. <변호인>(2013)에서는 고문 경감 차동영 역을 맡아 극악한 연기를 펼쳐 관객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고, <곡성>(2016)에서는 순박한 경찰인 종구 역을 맡아 나약한 인간의 내면과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수라>에서는 독종 검사 김차인 역을 맡았는데, 정의 구현을 외치면서 온갖 불법을 자행하는 악인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냈다. <특별시민>(2017)에서도 권력욕에 사로잡힌 노련한 정치인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극단적인 악역에부터 순박한 캐릭터까지, 그러면서 캐릭터의 내면에 자리한 고민까지 드러낼 줄 아는 그의 연기는 가히 탁월하다. <강철비>에서도 공적인 곽철우와 일상의 곽철우를 분리해 다른 색깔로 연기한 부분은 관객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영화의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몰입감을 높이는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끝'은 어디일까. <강철비>라는 논쟁적 영화가 반가운 동시에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만개(滿開)도 기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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