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시속 100km 이하로 떨어지면 '신칸센 대폭파', 위기에 빛나는 직업 정신

너의길을가라 2025. 5. 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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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은 시속 100km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합니다."

JR 동일본 고객 상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음성을 변조한 테러리스트는 신아오모리에서 도쿄로 가는 신칸센 열차에 폭탄을 설치했다며 시속 100km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한다고 경고한다. 사실일까. 혹시 장난 전화는 아닐까. 테러리스트는 철도 화물 열차에도 똑같은 폭탄을 설치했고, 시속 5km 이하로 떨어지면 폭발한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얼마 후 실제로 화물 열차가 폭발하고, 테러리스트의 말은 사실이라는 게 증명된다. JR은 발칵 뒤집히고, 회들짝 놀란 정부도 총리실 보좌관을 급파한다. 범인은 어떤 목적으로 신칸센에 폭탄을 설치한 걸까. 정부와 경시청은 어떻게 대처할까. 신칸센에 탑승한 타카하시 차장(구사나기 쓰요시)를 비롯한 직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어떠한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신칸센 대폭파'(2025)가 솔깃한가.

'신칸센 대폭파'는 1975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신 고질라'(2017)와 '신 울트라맨'(2023) 등의 히구치 신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직관적인 제목만큼이나 영화는 직선적이다.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는 신칸센마냥. 예고편이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을 살려 눈길을 끄는데,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구사나기 쓰요시가 정극 연기를 펼친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목적도 다른 승객들이 앝은 신칸겐을 타고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그러나 역에 도착하면 다시 남남이 되죠. 그 뒷모습을 보는 쓸쓸함도 나쁘지 않잖아요?"

테러리스트는 폭탄 해제 방법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1,000억 엔을 요구한다. 단, 일본 전 국민이 1인 당 1,000엔씩 내서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정부도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한다. 신칸센 열차 내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승객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타카하시 차장이 그런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백 명의 승객들은 다양하고 제각각이다. 수학여행 중인 고교생과 선생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젊은이들, 성 스캔들로 희화화된 국회의원과 보좌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유튜버, 어떤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산 인물 등이 끊임없이 부딪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공포와 혐오가 피어오른다. 또,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은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달려나간다.

폭탄 폭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JR 직원 및 신칸센 승무원들은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발휘한다. '승객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모토 하에 종합관제소장 카사기(사이토 타쿠미)는 온갖 묘수를 구상해 제시하고, 승무원들은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며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위기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하는 일본인 특유의 직업 정신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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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본적으로 재난과 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지닌 약점, 그러니까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테러리스트의 정체도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전도 기대에 못 미친다. 영화는 '복수'를 테러의 이유로 제시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져 좀처람 몰입이 어렵다. 줄어드는 신칸센 속도처럼 영화의 긴장감도 떨어져 134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신칸센을 소재로 한 재난 영화라는 희소성과 일본 사회 특유의 투철한 직업 정신이 주는 신뢰와 감동, 인질 구출을 위한 일본 국민들의 연대가 주는 인류애 등은 '신칸센 대폭파'를 선택해도 좋을 이유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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