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유럽 여행을 왜 가는 거야?”
겨울(11월 25일-12월 7일)에 독일-스위스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좋겠다!“고 부러워한 다음에 ”춥지 않아?“라고 되물었다. 맞다, 춥다. 겨울 여행은 여러모로 힘들다. 낮은 기온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짐도 많아진다. 두꺼운 외투가 캐리어의 공간을 절반 이상 채우면 숨이 턱 막힌다.
형형색색의 꽃도, 푸르른 나무도 사라져 도시의 분위기가 칙칙하다. 안 그래도 무채색 건물들이 더욱 차갑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겨울에 유럽으로 떠나는가. 기어코 겨울에 유럽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 떠나도 좋은 이유는 ‘크리스마스 마켓’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은 성탄절에 진심이라, 대부분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돌입한다.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니! 도시의 중심인 광장에는 각종 오너먼트와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마켓이 들어선다. 또, 거리의 상점들은 저마다 진심을 다해 내부를 꾸민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스위스’는 아름답다. 이번 여행에서는 (독일에서 이동해) 12월 1일부터 6일까지 스위스에서 머물렀다. 바젤(Basel)과 브베(Vevey), 몽트뢰(Montreux), 로잔(Lausanne), 취리히(Zurich), 루체른(Luzern), 필라투스 산(Mt. Pilatus)을 다녀왔다.
겨울 여행이기에 야외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서 ’미술관 투어‘를 테마로 일정을 짰고(이 선택은 탁월한 판단이었다.), 그 중간중간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마냥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겼다. 인생 크리스마스를 만끽할 수 있었던 스위스의 스팟들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 바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고 바젤로 이동했다. 3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는데, 바젤 시내의 풍경을 보니 피로가 싹 가셨다. 잠깐 ’봄이나 여름이면 얼마나 예뻤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둠이 내리자 그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겨울의 한기가 감돌았던 거리는 어둠이 내리자마자 새로운 빛으로 채워졌다. 거리를 밝히는 조명들이 커졌고, 크리스마스 마켓에도 활기가 돌았다. 광장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도 찬란히 타올랐다. 유럽풍 건물들과 아주 사소한 조명들이 조합되니 은은하면서도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상점마다 개성 넘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꾸며 놓았는데,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오너먼트, 초콜릿, 디저트, 그 밖의 각종 상점들까지 바젤의 거리는 로맨틱한 빛과 아름다움,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낭만으로 충만했다. 걸어도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바젤에서 오너먼트 상점으로 유명한 ‘Johann Wanner Christmas House’에도 들렀다. 생각보다 굉장히 큰 상점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살 만한 상품은 눈에 띠지 않았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마켓에서만 볼 수 있는 ‘케테 볼파르트(kathe wohlfahrt)‘에서 고퀄리티의 오너먼트를 여러 개 샀기 때문이다.
바젤 대성당 앞의 널찍한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있었고, 엄청 커다란 트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여행 중 봤던 것 중에 가장 컸는데, 칼바람만 불지 않았어도 좀더 즐겼을 텐데 지나고 나니 좀 아쉽다. 또, 바젤 시청 안쪽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2. 몽트뢰
스위스에 있지만 프랑스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몽트뢰는 중세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시옹 성(Chateau de Chillon)으로 유명하다. 레만 호수와 그 뒤의 설산(雪山)의 풍경은 넋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몽트뢰의 진정한 하이하이트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몽트뢰는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사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원조는 몽트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크리스마스 마켓의 규모도 다른 도시들에 비해 훨씬 큰 편이다. 큰 가건물 안에 여러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거리를 따라서도 장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번에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이다.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 있는 곳이 가장 핫한 스팟인데, 이곳에서 몽트뢰의 명물 ‘노래 부르는, 날아다니는 산타’를 만날 수 있다. 와이어 줄이 설치되어 있어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루에 딱 세 차례(17:00, 18:00, 19:00) 나타나는데, 산타가 날아올 즈음이 되면 광장에 사람들로 붐빈다.
산타가 나타날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산타의 (녹음한) 노래가 울려퍼지는 순간의 낭만적 분위기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관람차를 타고 있을 때 하늘에서 산타를 마주할 수도 있는데, 산타가 나타나는 시간이 조금씩 달라 말 그대로 운이다. (10-15분 정도 늦게 등장하기도 한다.)
3. 취리히
취리히는 워낙 대도시이고, 그 자체로도 정말 아름답다. 취리히 중앙역 앞의 대로를 반호프 거리라고 하는데, 하늘에 대규모로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감동은 카메라가 담을 수 없다. 엄청난 공을 들인 것도 아니고, 큰 비용을 들인 것 같지도 않는데 효과 만점이다.
광장에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하고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인 건 무대 위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발 디딜 틈없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부르는 캐럴을 들으며 즐거워했다.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간 힐링의 시간이었다.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라면 10월쯤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그랬다면 여행 일정도, 콘셉트도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아무래도 야외 활동(액티비티)의 비중도 높아졌을 것이다. 인터라켄으로 가서 패러글라이딩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여행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유럽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궁금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11월 말부터 12월 초에 이르는 12박 13일의 일정을 짰다. 그 여정 동안 ‘크리스마스 마켓’을 원없이 구경했다. 유럽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진심이었다. 약 한 달 동안 너나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에 빠져 지내는 듯했다.
아마도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기간일 것이다. 겨울의 매서운 날씨, 무채색의 삭막한 도심 풍경, 칙칙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잊게 하는 선물 말이다. 겨울에 유럽을 왜 가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그곳에 경험하지 못했던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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