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muscle)은 몸을 움직이게 하고 힘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조직이다. 단련할수록 강해지고, 방치하면 점차 소실된다. 근육은 기억이다. 한번 틀이 잡힌 근육은 자연스럽게 나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런데 근육이 몸에만 생기는 건 아닌 듯하다. 생각에도, 삶의 방식에도 일종의 근육이 형성된다. 또, 좋은 일을 하는 데도 근육이 생긴다. 이문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8월 31일 저녁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허브나라농원 별빛무대에서 '이문세의 숲속 음악회-열 번째 이야기'가 열렸다. 2003년 처음 시작된 '숲속 음악회'는 올해로 열 번째를 맞이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이문세의 트레이드 마크로 인식되고 있다. '숲속 음악회'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 자선공연으로 진행되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데 있다.
"이문세 씨는 본인의 출연료도 없는 자선공연을 16년간 꾸준히 개최하여 그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계신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숲속 음악회'를 총괄했던 허브나라농원 이지인 실장의 말이다. 출연료 없는 자선공연과 그러 인한 수익금 전부를 기부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킨 이문세의 '근육'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숲속 음악회'의 수익금은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뜰히 사용돼 왔다.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소인 라파엘 클리닉을 돕거나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쓰였다.
올해 열린 '숲속 음악회'의 수입금은 11년 전 이문세와 동료들이 네팔 다딩에 설립한 '날랑 학교'와 6년 전 랑탕에 세운 '툴로바르크 학교'의 학생들을 위해 사용됐다. 학교 건물의 보수 작업이나 학용품을 구입하는 데 쓰였다. 이처럼 이문세는 자신의 음악 활동과 기부를 병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냈다. 가요계의 대선배로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선한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문세의 '기부 근육'을 살펴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과거 그의 행보들을 되짚어보면 그 근육의 세밀함과 단단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문세는 16년 간 이어져 온 '숲속 음악회' 이외에도 1987년 이후 30년 넘게 지속적으로 근육병 환자를 도와 왔다. 2007년에는 연세대학교 영동세브란스병원 근육병 클리닉에 연구기금으로 사용해 달라며 5000만 원을 기탁했다.
또, 2015년 12월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을 찾아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뵈고 후원금 7500만 원을 전달했다. 'DMZ 평화 콘서트'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소녀'를 열창하던 이문세는 문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70년 전에는 평범한 소녀였다는 생각을 떠올렸고,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끝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던 것이다.
2017년에는 광고 모델로 발탁된 후 받은 억대의 모델료를 국내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이처럼 이문세의 기부 활동은 그의 히트곡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그의 히트곡의 인기만큼 지속적이다. 액수를 떠나서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는 건 힘든 일이다. 수익이 많다고 해서, 재산이 많다고 해서 기부가 쉬운 건 결코 아니다.
이문세에게 기부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의외로 대답은 심플했다. 2018년 10월 25일 SBS <나이트라인>에 출연했던 이문세는 "계기라는 게 필요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대중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받는다. 이런 제가 기부를 하면 그게 더 (기부문화 확대에)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유명인의 기부가 선한 영향력으로 확장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다. 이런 마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좀더 따뜻하게 변하지 않을까? 이문세가 오래 전에 뿌린 선한 영향력이 싹을 틔워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듯 말이다. 2014년과 2017년 두 차례 감상선암 수술을 받으며 40년 가수 생활과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던 이문세는 '이완'을 강조한다. 집중해 100%를 쏟아내기 위해서 충분한 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문세는 이완과 집중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근육을 더욱 단단히 하고 탄력적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그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사회를 선하게 만드는 일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좀더 오래 대중의 곁을 머무르길 희망한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가고,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들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때보다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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